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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버트&미셸 루드번스타인「생각의 탄생」,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2013. 6. 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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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0. - 6.17.

    로버트&미셸 루드번스타인「생각의 탄생」

    다빈치에서 파인먼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2가지 생각도구








    #1. 몸과 마음은 하나인가? 감각과 감성은 하나일까?


     #2.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우리 생각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조금 더 돌아가서 '생각'이 발생하기 전에 인지하는 과정부터 파악해보자.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한다. 이는 인간의 주관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인지 능력의 한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세계는 가득하다. 크게 인간이라는 생물에서부터 원자·분자에 이르는 물리적인 단위까지. 너무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엇을 볼 때 많은 것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에 있어서 새로운 무언가보다 이전에 경험하고 알고 있는 친숙한 대상과 호기심이 생긴 대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아는 만큼(=아는 것만) 보인다>라는 말이 가능할 터. 책을 읽기 전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의문은 '저자의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p.5 이 책은 '창조적으로 생각하기'에 관한 책이다. 모든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는 언어로 표현되기 전부터 나타나며, 논리학이나 언어학법칙이 작동하기 전에 감정과 직관, 이미지와 몸의 느낌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낸다. 창조적 사고의 개념은 공식적인 의사전달 시스템, 이를테면 말이나 방정식, 그림, 음악, 춤 등으로 변환될 수 있다.


     분명 새롭게 배우는 내용인데도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날 때가 있다. 반대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도 어느 날 새롭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나는 고가 언어로 표현되기 전부터 나타난다는 말에 주목한다. 인간의 인식 한계를 나타내는 (어쩌면 하나의 진리일 지도 모르는) '아는 만큼만 보인다.'라는 말을 부술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


     #3. 자신이 깨달은 바를 언어로서 표현하지 못해도 의미가 있는가? 사고가 언어로 표현되기 전부터 나타난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 세상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아는 만큼(표현력의 한계만큼)만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6월 11일에는 비가 간만에 쏟아졌다. 개인의 인식 한계에 관한 책을 읽고있던 나로서는 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비를 느끼고 싶었다. 시각, 단순히 빗방울을 통해 비가 내린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청각, 후두둑 후두둑 내리다가 쏴- 떨어지는 빗줄기. 철제 지붕을 때리며 나는 타닥타닥 소리와 지붕 밑의 쇠판자가 지붕에 모인 빗물의 양에 따라서 내는 리듬감 넘치는 비트까지. 그리고 어떤 감각으로 비를 느낄 수 있었을까? 건물에 있는 나는 촉감을 이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시큼하면서도 흙 속에서 나오는 듯한 냄새.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비는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데 왜 흙냄새가 날까? 나는 3가지 답변을 추측했다.

       A. 비 자체에서 나는 냄새

       B. 비가 땅과 부딪히며 나는 냄새

       C. 공기 중의 먼지를 머금고 떨어지며 나는 냄새

    A는 비를 모아 냄새를 맡았더니 모인 비에서 비가 올 때의 특유의 향이 없었다. B는 근무하는 공간이 2층이라는 점에 착안해서 1층으로 내려가면 땅(냄새의 진원지)과 가까우니 냄새가 강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냄새의 강도는 옅으면 옅어졌지 강하지는 않았다. 결국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C가 답이 된다. 공기 중의 먼지의 양이 한정적일 터이지 비가 오고 시간이 경과하면 냄새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비가 오고 시간이 지난 뒤에 (비 냄새에 익숙해졌는지 몰라도) 비가 오고 있음에도 비 냄새는 없었다. 나는 책을 통해서도, 다른 인물을 통해서 깨달은 게 아니다. 나는 세상을 넓게 인식하고 있다. 다만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인식하고는 있지만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5. 양손등에 꼬집힌 흉터가 많다. 초등학생 때 좋아하던 여자애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놀리고서는 손등을 꼬집혔다. 그 애는 무슨 생각이었길래 나를 이렇게 세게 꼬집어 흉을 지게 하였을까? 신기하게도 6월 12일에 10년이 지난 흉터의 딱지가 떨어졌다. 나는 여기에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본다.

    - 그 애도 내 생각을 10년만에 하는 것인지. 그 애에게 안 좋은 일이 있는 건지. 아니면 내 몸과 마음에 새살이 돋아날 증거인지.

     손등에 상처를 얻으며 만든 관심으로 그 애랑은 잠시나마 만났다. 그러나 얼마 뒤 이사를 떠났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발달한 시대였다면 계속 만났을지도 모르는 것을 그리워하며 연락을 못 해 일상 속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날 꼬집은 그 애는 나를 금방 잊었겠지만 내 손등에 흉터는 10년이 지나도 남아 가끔 떠오른다.


     #6. 손등의 흉터를 통해 몸과 마음이 하나일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비록 흉터는 몸에 남아있지만 물질적인 선물과 비슷하다. 목걸이를 선물로 받고 그것을 10년 이상 하고 다니는 것과 같다. 그런 감상적인 물건을 보고서 감성적인 상태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목걸이와 달리 내 몸에서 땔 수 없는 흉터라는 점이 계속 눈에 밟힌다. 몸과 마음이 하나일 가능성은 무엇일까? 감각과 감성이 하나인 이유는 무엇일까?


     #7. 우리는 때로 어떤 감각을 통해 특정한 심리상태에 빠지곤 한다. 나는 들깻가루를 먹으면 수능이 끝나고 며칠 뒤 엄마와 함께 식당에서 먹은 미역국이 떠오른다. 수제비 가게라 미역국은 단순한 입가심용으로 나왔으나 들깻가루가 듬뿍 뿌려져 고소하고 묘한 맛이 강했다. 나는 들깻가루를 먹으면 수능이 끝나고 뒤숭숭한 마음과 함께 오랜만에 엄마와 둘이서 외식했던 시원한(기쁜) 기분이 들곤 한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가졌던 첫 번째 방이 떠오른다. 우리 가족은 굉장히 일찍 잠드는 편이었다. 9시면 집에 불이 다 꺼졌다. 내 방 창문은 산을 향해 놓여있었는데 정확히 산의 입구와 꼭대기까지 볼 수 있는 산과 매우 가까운 14층이었다. 그래서 산의 입구에 있는 논과 밭, 그리고 산의 계곡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계곡에서 개구리가 우렁차게 울었다. 불이 꺼진 방에 요를 깔고 누워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천장을 바라본다. 천장에는 별/달 모양의 야광 스티커가 형광등에 붙어있다. 더운 여름에도 나는 선풍기 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산을 향한 창에서 시원한 바람이 에어컨보다 차갑게 불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면 컴컴한 밤에 요를 깐 바닥에 누워 기분 좋은 개구리 소리가 데려온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야광 별과 달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내가 시각을 통해 손등의 흉터를 보고 만지며 감정이 변한 것 역시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8. 아무리 마음이 올곧아도 연약한 육체에 깃들어 있다면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최소한 서로 영향을 준다)


     #9. <아는 것은 수동적인 것이며, 이해한다는 것은 앎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 올더스 헉슬리의 '이해'의 정의

     「생각의 탄생」은 창조성이 뛰어났던 인물들의 사고 과정을 파악하여 창의적인/창조적인 <생각의 탄생>법을 알려준다. 궁극적으로는 현재 편파적이고 과목이 뚜렷하게 나뉜 교육 대신 통합적이고 전인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정보혁명 이후 넘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배우고 인식하기만 하면 가치가 없다. 정보가 많아지고 깊어졌기 때문에 지식의 파편화가 초래된다. 결국 쓸모없는 정보가 된다. 중요한 것은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

     환상과 실재, 분석과 경험, 마음과 몸, 지성과 직관 그리고 환상과 실재를 이어주는 다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우리는 수학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느냐를 배우지 못하고 그저 전달 언어로서의 수학을 배울 뿐이다. 이해하지 못하고 암기·인식할 뿐이다.


     #10. 

     생각하는데 13가지 도구나 필요한 이유는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p.20. 누구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똑같이 '잘'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 요리의 대가에 견줄 수 있는 사고의 달인이 있다. 그는 여러 정신적 재료들을 가지고 맛을 내고 섞고 조합하는 것에 도통한 사람이다. 우리가 어떤 '지적' 만찬을 준비한다면 그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생각의 부엌'에서 그가 하는 일과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르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더 잘한다는 말이다. 대가가 되려면 아주 재능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오랫동안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흔히 말하는 천재의 생각과 우리가 하는 생각은 같은 행위이다. 그러나 생각의 부엌에서 사용할 재료를 보는 눈이 다르고 요리 도구의 사용법을 잘 모르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양한 맛을 느끼기 위해 볶고 지지고 삶고 튀기고 굽고 데치고 익히는 방법을 알아야 하듯이 재미있고 유익한 삶을 살기 위해 13가지 생각 도구, 적어도 다양한 생각방법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13가지 생각 도구를 통해 전인적인 교육을 하여 재미있고 유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다.

     #11. 버드런트 러셀의 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행복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관심(열정)의 분야를 넓혀서 인생의 폭을 넓혀라. 관심 분야가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해질 기회는 그만큼 많아지고, 불행의 여신의 손에 휘둘릴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고 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추상적으로 표현한 관심의 분야를 확대하는 일이 「생각의 탄생」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바로 13가지 생각의 도구이다.

     

     #12. 어릴 때부터 나는 물건을 쉽게 찾지 못했다. 덤벙대고 물건을 아무 데나 던져두는 습관도 한몫을 했지만 대상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명확히 그리지 않았던 이유도 컸다. 대상에 대해 생각을 안 했기에 내 관찰력에 영향이 왔다. 결국 사고와 인지, 지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고라고 부르는 인지작용은 지각 너머의, 지각보다 상위에 있는 정신적 과정이 아니라 지각 자체를 이루는 본질적 요소다.>

     - 아돌프 아른하임, 「지각적 사고」

     책을 읽으며 주변에서 만나 오던 많은 감각들과 인물들을, 대상들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 존재를 이해하는 것과 인식하는 것의 차이.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수동적으로 인지할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고 들으며 눈 앞의 현실과 머릿속의 개념을 통합하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언행보다는 기억과 증거로써 평가하듯이 책 역시 문장보다는 저자의 의도를 중시해야 한다.

     

     #End.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수동적일지라도) 모두 인식한다.
     인식은 언어 이전에 나타난다. 사고 역시 언어 이전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타인에게 수혈하기 위해서 인지 너머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해를 통해 대상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언어로서 표현이 가능해진다. 이해를 위해서는 전인적/통합적 교육이 필요하다.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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