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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부활」, 동물적 자아의 죽음과 정신적 자아의 부활책 2013. 6. 22. 16:56반응형
5.31. - 6.7.
톨스토이 - 「부활」
동물적 자아의 죽음과 정신적 자아의 부활
#1. 다양한 인간상象을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정신 속에 이렇게 많은 유형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지 놀랍다. 톨스토이는 인간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뛰어났을 것이다. 수십 명의 죄수와 부유한 귀족들의 특징을 몇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사람을 묘사함에 길게 늘어지기보다는 핵심 요소로 설명하는데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상이다. 특히나 제2장에 등장하는 검찰차장 <세레닌>은 내 모습과 유사함을 느낀다. 세레닌은 정직한 인물인데 주변 환경과 직업, 인물들 때문에 망가지는 인물이다. 정직한 성격 때문에 거짓을 표현할 수 없다. 그리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가지고 있다. 정직한 성격상 망가진 환경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망가진 가치관이 필요하다. 스스로 정직함을 나타낼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돌이키지 못한다. 세레닌은 '정직성'에 갇혀 옳은 일을 할 수 없다. 분명 정직성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요소이지만 가치에 갇혀버리면 다른 미덕을 저버리게 된다.
세레닌을 정직성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낼 수 있듯이 주인공 네플류도프는 '죄의식', 많은 귀족들은 '허영심'이라는 핵심 요소로 파악할 수 있는데 책을 통해 세상의 다양한 인물상에 대한 통찰을 키울 수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단순한 몇 가지 요소를 얻기 위해 살고 있다. 살아간다.
#2.
p. 125. '…철면피, 비열한! 모두들 제멋대로 나에 대한 비판을 하려무나. 사람들을 속일 수가 있다. 그러나 자기를 속일 수는 없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요즘 사람들에게, 특히 오늘 공작에게, 소피야 바실리예브나에게, 미시에게, 코르네이에게 느낀 혐오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기의 비열함을 인정한 이 심정 속에 무언지 고통스럽게 하지만 후련한 듯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있었다.
이러한 각성이 있은 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의 생활 신조를 만들어 평생토록 그것을 지킬 결심을 하는 것이었다. 일기를 쓰고 새 생활을 시작하여 이제는 절대로 배반하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그 스스로에게 말한 표현을 빌면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세상의 온갖 유혹에 걸려 자기도 모르는 동안에 발을 헛디뎌 전보다 더 낮은 곳으로 굴러떨어져 버리곤 했던 것이다.
자본과 산업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로 경쟁은 흔한 일이 되었다. 경쟁사회라고 할 정도로 경쟁이 팽배한 지금 우리는 타인을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에 익숙하다. 경쟁이라는 명목하에 과연 우리에게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평가할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성격의 다양성과 감정의 유동성을 근본으로 하는 인간을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가? 바로 우리 자신의 허물과 현실 그리고 이상을 근거로 한다. 결국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것인데 나 역시도 누군가에 대한 비판을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내 모습에 대한 것이었다. 지나치게 완벽성을 추구하며 인간성을 떨어뜨리는 모습, 정직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 등 결국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꼴이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인물은 내 이상이 녹아있는 사람일 것이고 친한 사람은 나와 감성/이성 수위가 비슷한 사람, 내가 비판하는 사람은 내 허물을 덮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나 스스로 돌이켜보는 거울로 삼아야한다. 그의 철면피적인 행동에 분노한다면 나 스스로 그랬던 적은 없는지 돌이켜보고 그 사람이 철면피를 쓰게 되는 인간상의 키워드를 찾아봐야 한다.
#3.
p. 262. 어느 문제건 생각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는 지금 그 문제들을 새삼 생각해보고는 모든 것이 너무나 간단한 데에 놀랬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자기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그의 주의를 끌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발생한 사건을 돌이켜볼 때 우리는 때로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바로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는 것. 누군가가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어떤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이다. 때로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며 원인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서로 엮이며 발생한 결과일 뿐이다. 지금껏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이 결과였고 사실상 알 수 없는, 인연과 인과관계의 결과로 발생한 일이었다. 내가 추측하는 < 이 일을 하면 나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하여 원인들로부터 답을 얻은 것이 아니라 결과들을 통해 답을 추론하려는 오류에 빠져 있었다.
계획은 할 수 있지만 추측은 할 수 없다.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지도를 그릴 순 없다. 삶이란 것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로 가득 차 있기에 지금 내 행동의 결과가 무엇이 될 것이고,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질문은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Action에 있어 중요한 질문은 하나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4.
p. 333. 좋지 못한 행위는 없었다. 그러나 좋지 못한 행위보다도 더욱 나쁜 것이 있었다. 온갖 좋지 못한 행위를 자아내는 온갖 생각이 있었다. 좋지 못한 행위는 후회를 하고 되풀이하지 않도록 할 수가 있지만 좋지 못한 생가은 모든 좋지 못한 행위를 자아내는 것이다.
하나의 좋지 못한 행위는 다른 온갖 좋지 못한 행위에의 길을 마련할 뿐이지만, 좋지 못한 생각은 불가항력으로 그 길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네플류도프는 그날 아침 머릿속으로 어제의 생각을 들추어 보고 비록 1분간일지라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던가 싶어 어이가 없었다. 그가 실행하려고 정하고 있었던 일은 아무리 새롭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이것이 지금의 그에게 있어 단 하나의 가능한 생활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무리 몸에 밴 안일한 일일지라도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그에게는 어제의 유혹이, 흔히 사람들이 싫증이 나도록 자고 나서 이제는 조금도 잠은 오지 않지만,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소중하고 반가운 일을 위해 이미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좀더 침대 속에서 따뜻하게 누워 있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꼭 그와 같은 심정이라고 여겨졌다.
「부활」이라는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톨스토이의 뛰어난 비유이다. 우리가 몸에 밴 습관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것처럼 추운 날 아침의 따스한 이불 속에서의 빈둥거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주목해서 읽은 것은 주인공 네플류도프의 내적 갈등과 그 해결이다. 보통 소설 속 영웅이나 위인들이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수반되는 고민의 과정을 알 순 없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일을 이루거나 고민 없이 헤쳐나가는 듯이 보인다. 그런 모습에서 괴리를 느낀다. 소위 말하는 <영웅적 행위>는 일탈에서 발생한다. 일상에서 영웅이 될 수는 없다. 일탈을 하기 위해서는 몸에 밴 습관을 떨쳐내야한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말을 빌리자면 <Il faut vivre comme on pense, sans quoi l'on finira par penser comme on a ve´cu.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살아온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부활」에 등장하는 수많은 귀족들은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안다. 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들은 살아온 대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법을 잊어버렸다.
그렇다. 이것이 현실이다. 꾸준히 자신을 경계하고 타인과 비교하여 옳은 행위인지, 타성과 습관에 이끌려다니며 삶의 주체가 아닌 습관의 객체로서 살아가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부활」에서는 기존의 동물적 자아를 부정하고 희생한 뒤에야 부활하는 정신적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책이다. 책은 결국 하느님의 뜻에 따라 부활하는 것으로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자신의 치켜드는 습관들을 타파키 위한 고뇌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행동치 않았지만 생각만 떠오르는 것에 치를 떠는 것이다.
#5.
톨스토이가 「부활」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법률가 친구에게 들은 에피소드 때문이다. 부모님이 모두 죽고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핀란드 여자가 있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한 부인이 집으로 데려와 양녀처럼 키우는데 세월이 지나며 점차 냉대를 받으며 하녀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어느 날 부인의 집에 놀러 온 친척 청년이 여자를 유혹하여 임신시키고서는 떠나버린다. 부인은 이 사실을 알고서 여자를 쫓아냈고 여자는 아이를 낳자마자 보육원에 맡기고 가장 값이 싼 매춘부가 된다. 세월이 지나 여자는 손님의 지갑을 훔치다가 걸려 법원에 회부되는데 우연히도 재판의 배심원으로 친척 청년이 끼어있었다. 청년은 큰 충격을 받고 여자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여자는 발진티푸스에 걸려 결혼식도 못한 채 죽고 만다는 이야기. 이런 fact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 더욱 흥미롭다. 사회의 문제점을 내포하며 작가의 시각을 통해 에피소드를 다시금 해석하게 된다.
톨스토이의 책을 처음 읽지만 읽으며 그가 거인이라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인간상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좋은 삶>을 찾기 위함이 아닌가.
p. 472. 여러 종교가 있는 것은 남을 믿고 자기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오. 나도 남을 믿다가 그 때문에 숲속을 해매듯이 길을 잃었던 것이오. 완전히 길을 잃어버려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소. 구교도, 신교도, 안식교도, 분리파교도, 승려파교도, 무승려파교도, 오스트리아교도, 몰로칸교다. 거세교도 등 어느 파든 제 자랑만 하거든. 그래서 모두 눈먼 강아지처럼 저마타 흩어져 버리지. 종교는 많지만 영혼은 단 하나뿐이야.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저 사람에게도. 그래서 모두 자기 영혼을 믿는다면 다 하나로 결합되는 거요. 모두가 자기를 믿는다면 다 하나로 될 수 있단 말이오.
6.8.
생각대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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