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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형태를 잘 파악한, 박민규님의 <근처>
    2013. 2. 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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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0. - 1. 30.

    박민규 - 근처

    2009 황순원 문학상 수상

     

     

     

     

     

     

    p. 39

     

     나는 혼자다. 혼자인 것이다. 찾아 나설 아내도 없다. 설사 네 명의 자식이 있다 해도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문득 혼자서 혼자를 위로하는 순간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란 걸, 이 세계가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문단sentence가 짧다. 짧디 짧은 것들이 모여 문장text를 이룬다. 마치 이 문장은 무딘 커터칼같다. 칼이되 날카롭진 않다. 그러나, 그래도 가슴을 깎아내린다. 안구를 찌른다. 그리하여 커터칼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 금을 따라 날을 조각낸다. 문단의 경계는 커터칼의 금이다. 커터칼 조각이 모여 커터칼날이 되듯이, 날카로운 문단이 모여 문장이 되었다. 문단 문단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자칫 미끄러졌다간 끝없는 허무로 빠질 것 같았다. 조심스래, 그리하여 가슴깊이 읽고 읽으며 읽어갔다.

     

     이 소설의 화자는 「누런 강 배 한 척」처럼 중년 남성이다. 기계의 부품처럼 열심히 일하고, 일만을 위하여 일하고, 쉬지도 않으며 일하고, 일하다 보니 결혼도 안한채로 일하고, 힘 닿는 곳까지 일하다보니 어느새 간암에 걸려 죽음이 다가와있다. 단지 열심히 살았을뿐인데, 열심히 일한 대가로 인생은 죽음에 가까워져 있었다. <나>의 성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나. 아-.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한 인간일 뿐이다.

     

     자칫 무서운 문장이다. 커터칼로 내 열정과 야망마저도 배어가려한다. 열심히해도 소용이 없다. 인생은 삶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이어질뿐. 누런 강을 건너기 시작해 흔들리다가 흔들리다가 결국 강을 건너고야마는 배 한 척일뿐. 견딜 수 없는 순간은 있어도 견딜 수 없는 인생은 없다. 그저 살아가면 된다. 그저.

     

      다만 미묘하게도 그저 살아가라는 것이 그지같은 삶은 아닐테다. 20대 젊은이에게 야망과 꿈이 없다면 그지 거렁뱅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나의 <근처>만 배회하며, <근처>만 열심히 돌아다니지 말라는 의미일테다.

     

     진정한 나. 이 소설에서는 <근처>에서 중심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않다. 그저 <근처>를 배회한 인간의 삶과 체념을 통해 독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은 소중하다. 그저 열심히 해서는 안된다. <나>에 들어가기 위해 성실해야한다. 박민규님의 소설을 읽어왔을 때 어쩌면 성실은 답이 아닐지 모른다. 자신을 느끼며, 세상을 느끼며, 주위를 느끼며ㅡ. 그렇게 자신이 칠 수 있는 공만 치고 달릴 수 있을만큼만 달리는 것. 성실이 <나>를 벗어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나>를 묶는, 보호막이 되도록. 살아가면서 만날 수 많은 장애물과 커터칼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류시화님의 「별(사랑이 없다면 살 수 없는,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라는 시처럼.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별만 신경쓰면 된다. 우리의 별이 발하는 빛 근처만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별을 향해.

     

    p. 30.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연두와 초록, 노랑의 저 색채를 음미하고 기억하려 한다. 모든 물감을 섞으면 검정이 되듯 소소한 삶의 순간들도 결국 죽음으로 물들게 될 것이다. 물이 흐른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폭이 넓고 깊은 삶이 흐르고 있다.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째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즐겁고, 실은 즐거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르겠다.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것은 캄캄하고, 끝없이 길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으

     결국 체념이다.

     

     

    1. 30.

    근처로만 가는 이는

    체념에로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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