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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9. 10.) 최인호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책 2012. 11. 17. 13:09반응형
12. 09. 07. - 12. 09. 08.
최인호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낯익음. 낯설음. 한 글자 차이지만 그 의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두 단어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낯익음과 낯설음의 경계가 미묘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난 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읽는 도중 머리가 계속 아팠다. 주인공이 혼란스러운지, 내가 혼란스러운지 구분이 안되었다.
이 작품은 정확히 두 달만에 쓴 장편 소설이다. (관련기사) 흐름이 끊기지 않고 쓴 글. 그래서일까 나 역시 흐름이 끊기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혼란스러운 이유는 간단하다. 왜 그렇게 진행되는지 이해가 안된는 부분이 존재함으로.
- 주인공이 정신을 잃었던 시간은 어디로 간 것인가
- K1이 갑자기 '레인저'라 불리는 이뉴는
- 언제부터 K1과 K2로 나뉘었지? 편지를 보내기전?
- 주인공의 착각인가? 세탁소에서 아파트로 가는 이유는?
- 마지막에 등장인물이 다시 다 나오는 이유는?
- 토요일 · 일요일 · 월요일로 챕터가 나뉜 이유는?
- 스킨이 항상 바뀌는 이유는?
제목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을 보았을 때, 내 서울 생활이 떠올랐다. 매일 타는 지하철, 매일 가는 학교, 집 주변의 거리, 모두 낯익지만, 타인들과 있다.타인은 낯익을 수 있는가? 내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난 표현만으로는 알 수 없다. 나는 그들의 외부에만 익숙해지고 낯익어가는가.
p. 125.
K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론을 내렸다.
낯이 익다는 것은 속임수다. 낯이 익다는 것과 낯이 설다는 것은 이음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상 '낯'이란 것은 우리의 얼굴이 아닌가? 낯익는 다는 말 자체가 겉모습에 익숙해진다는 말인가.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느 것이 조금만 달라져도(ex, 스킨, 아내의 태도, 잠옷) 낯익은 것이 낯설은 것이 되는가,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타인들은 낯익거나, 낯설거나 할 수 밖에 없는 이중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이해에 도달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인가?(심지어 가족마저도.)
이 세상에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렇다면 '나'뿐이다. '낯'말고도 '얼'을 아는 유일한 대상. 상황에 따라 낯익은 모습을 보이기도, 낯선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나. 그리고 이러한 이중적 모습을 이해하는 나.
이 때 중요한 것은 낯익은 모습과 낯선 모습 모두 온전한 '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은 같은 것인가. 근본은 같은데, 상황에 따라 표면이 바뀌는 것인가? 그렇다면 타인들 역시도 똑같이 않겠는가. 타인들도 낯익고 낯선 것 이상의 이해하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일찍이 나는 내 존재의 다양성을 알고 있었다.
' 학교에서는 착하고 조용한 장난꾸러기 / 학원에서는 시끄럽고 말썽피우는 심술꾸러기 / 집에서는 말안듣고 게임만하는 오락쟁이. '
중학생 때 나는 내 3가지 모습에 항상 의심을 했다. 분명- 같은 나 인데 상황에 따라 어찌 이렇게 다른가. 시간이 흘러 군대에 있는 지금, 나는 아직도 다양하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나 역시도, 아니 내가 단수라도 내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운텐데, 나 역시 단수가 아닌 복수의 존재이기에, 타인들에게 절대적 타인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 복수의 존재이기에 '우리'라고 묶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렇다면 낯익은 모습과 낯선 모습 사이에서 진짜 '너'를 볼 수 있는가? 낯익음과 낯설음의 경계에 이해할 수 있는 '너'가 존재하는 것인가. 라고 나는 생각한다.
K1과 K2처럼 나 역시도 H1, H2, H3로 나뉠 것이다. 어떤 장소(상황)에서 관계에서 달라지는 나. 보통 L의 앞에서 있을 때는 'L앞에서의 나'가 된다(LH) 하지만 U 앞에서는 UH가 되고, L과 U가 같이 있다면-. 내 모습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공식을 사용한다.
' 친밀도 = 만난 횟수 X 만난 시간 + 각자 재능(관심 · 유머 · 드립력) '
이 중 나는 절대적으로 횟수와 시간을 강조한다.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늘기에. 그 사람도 나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늘기에. 여러번 만남을 통해 익숙해지면서 낯이 익고, 그러는 사이 낯선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게 된다고 할까. 이 것이 내가 책에서 느낀 내용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점 - 고독한 군중의 문제(김민수 - 필로 디자인)이다. 우리는 최근 타인을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전화가 발명되기 전 우리는 연락을 위해 편지나 직접 만나는 수 밖에없었다. 만나기전, 편지가 오기 전에는 오랜시간 서로를 생각할 시간이 존재했다. 지금은 문자 · 카톡 · 페이스북으로 알 수 있다. 너무나도 쉽고, 간편하게. 대중매체의 발달로 점점더 획일화되어가고, 집단의 동질성은 더욱 커져갔다. 대중 소비 문화가 만연한 지금, 우리는 다들 비슷비슷하게, 타인 지향형의 인간이 되어간다. 비슷하기에 스펙이 중요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다. 비슷하기에 서로를 더욱 드러내고 싶어하고, 쉽게 정보를 알 수 있기에 쉽게 낯익고 쉽게 낯설어지는 것 아닐까.
뭐든지 쉽게 얻으면 쉽게 잃는 것 같다. 편안하게 살더라도 치열하게 고민해야한다.
p. 120.
이질감이라기보다는 비현실감, 비현실감이라기보다는 혼돈감, 혼돈감이라기보다는 카오스적 무질서, 무질서라기보다는 속고 있는 것 같은 기민감, 기민감이라기보다는 극도의 고열로 인한 가소면 상태의 기면(嗜眠)과 같은 환상, 그러한 불안감이 한꺼번에 소멸되는 것 같은 위로를 느꼈다. 위안으로 안심이 되자 K는 잠시나마 휴대폰 속의 여인을 아내와 동일시했던 자신의 순간적인 의처증에 대해서 미안함을 느꼈다. K는 아내가 통화 마지막에 미안해요, 여보, 라고 말했듯 그 소리를 흉내 내어 중얼거렸다.
미안해, 여보.
낯익음과 낯설음의 경계. 잘 설명했다.
p. 294.
k는 잠시 포크를 내려놓고 중얼거렸다.
이 모든 것은 '메이 쿨파'에서 비롯되었다. K는 지금껏 어제 아침부터 시작된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아내를 비롯한 딸, 강아지, 휴대폰, 성냥갑, 체제와 죽음에서 부활한 장인, 넓적다리를 보인 노출증 여인, 휴대폰도 습득하고 그 대가로 보험을 강요한 '을, 대리운전기사, H, H의 아내, H의 간호사, 한 때 매형이었던 P교수, 친누이 JS,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출증의 그 여인, 투명한 창문 너머로 젖가슴을 보여주던 노출증 여인과 복제인간, 세일러문 등 K를 제외한 모든 존재가 시뮬레이션의 가상 현실속에서 K를 속이고 통제하고 조종하고 세뇌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모든 불가사의한 현상 중심에는 K가 있다. ···의심스러운 존재라고 여기게 된 모든 의혹의 출발점에는 K 스스로가 K가 아닐 수도 있다는 대전제가 먼저 선생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야만 이 모든 난해한 등호의 방정식은 간단하게 풀리게 된다.
이 모든 가상현실에서 바뀐 사람은 다름 아닌 K다.
책의 마지막이다. 강렬하다.
p. 392.
이 소설은 K라는 남자의, 사흘에 걸친 이별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별은 자발적이지 않고, 또 어떤 감상적인 태도도 허용되지 않는다. 단숨에 칼을 내리치듯이 하루 아침에 K로 하여금 자신이 익히 아는 현실에서 떠날 것을 명령한다. 물론 K는 강렬하게 저항하면서 자신이 아는 현실로 돌아가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현실이란 스킨과 같은 사물들, 말투와 행동 등 아내의 습관들,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라는 걸 깨닫게된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그의 현실도 없다. 그렇다면 현실이란 곧 일상의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별하는가?
일상적인 것들에서 멀어지면서. 인연들이라면 매주 토요일이면 새로 만나던 일을 하지 않거나, 밤늦게까지 통화하던 습관을 버리면서, 헤어지고 나서 언제 눈물이 제일 많이 났는지 생각하면, 이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연인의 손을 더 이상 잡지 못하는 게, 그게 바로 이별이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그런 이별을 경험한다. 우리가 알던 현실이 붕괴될 때다. 이 현실이 붕괴되면 우리는 비일상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이 공간은 신비의 공간이다.
낯설은 것에 조금 익숙해진 느낌이다.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니까-.
2012. 09. 10.
일상이 비일상이 되는 것. 이것이 이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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