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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님의「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열등감.
    2013. 10. 2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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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 - 9. 10.

    박완서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열등감.



     #0. 새로이 온 곳엔 새로운 책이 많이있다. 매력적인 자태를 보이는 책도 많고 한 작가의 책이 3~4권 있기도 하다. 그 중 특별한 이유없이 '박완서'라는 작가에 끌렸다. 아마도 내 Blog 유입 키워드 상위 요소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때문이 아닐까.


     #1.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날카로울 정도로 자신에 대하여 솔찍하게 말하고 세상을 평가하는 눈에 놀란다. 인간이란 것은 자신의 연약한 성격과 모난 성질을 가리고 메우기 위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합리화하곤 한다. 그것이 의식적인 거짓말일 때도 있고 무의식적인 거짓일 때도 있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내 허물을 감추기 위해 사건의 원인을 이리저리 바꾸어 자신을 달래기도, 속이기도 한다. 

     그러나 박완서님은 그런 것이 없다. 아주 솔찍하고 직설적이게 원인을 해집는다. 평소 내가 응석부리고 청승 떨던 일들을 주변 사람 탓으로, 환경 탓으로, 남이 게을러서 내가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서 그 모든 것이 세상을 향한 열등감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닐까...스스로 돌아볼 기회가 주어졌다.

     

     #2. 책은 크게 3part로 나뉘어져있다. 먼저 작가의 산문집같은 1부 - 내 인생의 밑줄. 작가님의 일상에서 얻은 소재로 글을 썼다. 솔찍하게 담아 일상에서 작가님의 심리상태까지 읽을 수 있다. 다음은 일종의 책 감상문인 2부 - 책들의 오솔길. 작가님이 읽고 인상 깊은 내용과 느낌을 적어두셨다. 여기서 읽어본 책(엄마를 부탁해와 영혼의 편지)의 감상만 읽었다. 마지막으로는 추모글인 3부 - 그리움을 위하여. 자신에게 쓰는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바치는 글이라 미사여구가 많았다. 그러나 어떤 울림이 존재했다.

     

     #3. 2013년 전까지 책에 밑줄 긋는 것을 혐오했다. 책이라는 것이 지식을 쌓기 위한 일종의 소비재임을 알면서도 책이 소모되는 게 싫었다. 누군가 책을 빌려가서는 표지의 날개를 아무렇게나 읽던 곳에 꽂아두어 책을 엉망으로 만들거나, 읽던 곳의 페이지를 접어두거나 밑줄이 그어져 있으면 내가 책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감정과 가치가 손상당한 것 같아 불쾌해졌다. 작가와 내가 간접적으로 소통한 공간이 구겨져 기억마저 구겨지는 느낌.

     또한 다시 책을 읽을 때는 전에 읽은 감정과 중복없이 새롭게 만나고 싶어 책에 어떠한 표시도 않고 인상깊은 부분에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여둠으로써 표시했다.

     

     나는 내 것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책을 깨끗이 보았다면 작가는 자신이 드러나는게 싫어서 밑줄 긋지 않았다고 한다. 소녀시절 책은 너무 비쌌기에 한 권으로 여러명이 돌려보았다고 한다. 자연히 책에는 주름도 많아지고 여기저기 밑줄이 많았다. 그런 밑줄을 보며 '흥- 이런 부분에 감동해?'라고 느낄 때가 많았고 남들이 내가 그은 밑줄에 웃을까봐 책을 깨끗하게 보셨다. 어느날 책을 속아내다가 우연히 자신이 밑줄 그어둔 책을 보고서는 그 당시의 되살아났다고 한다.

     *p.153. 우리가 책에 밑줄을 긋는 것은 그게 명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읽을 당시의 마음상태에 와 닿기 때문이다.


     #4. 올해 초부터는 싸게 질 좋은 책을 살 수 있다는 장점에 중고서점을 통해 책을 구매하고 있다. 웃긴건 이렇게 구매한 책이 서점에서 새로 산 책보다 애정이 많이 담긴다. 남들의 손을 거쳐 결국엔 내 손에 들어왔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미 주글주글하고 낡았기에 책에 솔직하게 흔적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밑줄도 긋고, 하이라이트도 칠하고, 포스트잇에 감정을 메모하여 붙여두기도 하였다.

     다시 읽을 때 처음 읽었던 당시의 미묘한 감정을 캐치할 수 있지 않을까?


     #5. 이 책에 3~4줄을 그었다. 가슴 속에 있었으나 잃어버린 마음도 있었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숨기고 있던 마음도 있었다. 그를 보여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 중 몇줄을 소개하고 싶다.


    #5-1. 숭례문에 관한 이야기.

     최근 하루하루가 일상에 묻혀 살아간다. 삶을 주체적이기 보다는 인생이란 짐승에 끌려다니는 느낌. 최근에는 사건이 결국엔 내 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끌려다니고 아무리 발악해도 결국 외부의 결정에 의해 내 삶의 거취가 결정나곤 했다. 그래서 굳이 내가 주체적으로 살 필요가 있나...생각을 무심결에 했었다.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도 벅찬 삶이었다.

     그런 생활에 마침표가 찍히고 새로운 악장이 펼쳐졌으나 여전히 삶에 끌려다니고 있었다. 세상은 세상이고 나는 나 일뿐... 내가 그 구성원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작가님이 쓴 <아아, 남대문>을 읽고 나서야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흐릿하게 살고있는가 돌이켜보았다. 내 의도가 포함되든 아니되든 간에 세상엔 큰 일이 발생한다. 2003년도 즈음에 대구 지하철참사라던지, 2010년 연평도 포격처럼. 내 일이 아니더라도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관심을 가지고 깊은 공감을 하고 같이 슬퍼하고 세부적인 사항까지 알아야 하는 비극이 발생하는데-. 나는 그들을 너무 멀리하지 않았나...생각 되었다. 내게는 남대문이 소실된 일도, 다시 얼마전에 복원된 일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지루하고 무료한 '하루'들 중 하나였다.


    #5-2. 최근에는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 생활한다. 그래서 작은 일에도 민감하고 크게 반응하게 된다. 청소를 누가 하는가. 정리를 하는 것, 빨래하기... 그 모든 사소한 하나하나가 확대되어 보인다. 그래서 행위를 보기보다는 그 행동에 내 감정과 상상과 추측을 덮어씌운다. 사소한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망이 든다. 상대보다 내가 대단하고 어른스럽고 부지런한 좋은 인간으로 만든 뒤 상대를 무시하게 된다.

     <친절한 나르시스트들>이란 산물을 읽고서야 내 심리상태를 읽었다. 한국 고급 식당에서 일하는 옌변인과 일본 료칸에서 일하는 옌변인의 삶을 보며 느낀 글이다. 한국 식당의 옌변인은 재능과 관계없이 '옌변인'이라는 이유로 힘든 자리에서 부당하게 무시당하며 살아간다. 반면 일본의 옌변인은 재능을 살려 최선을 다해 일을 잘 처리하고 대우도 받는다. 이는 한 존재를 껍대기(소속)으로 보는가 존재 그 자체로 보는가의 차이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나르시스트)과 식민지와 전쟁등 불우한 삶을 살아온 한국인의 열등감 차이로 바라보았다. 높이있기에 여유있게 남을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으며, 항상 조급하고 불안하기에 남을 낮춰서라도 올라가려고 한다.

    생각하고 고민하였다. 나는 변명거리가 많았다. 열심히 일하고 호구가 되지 않기위해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고 내가 선배니까 대우받아야 한다는 자존심도 있었다. 상대방의 직설적인 말투에 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기도 했고 너무 쉬워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 그 모든 것들은 게임일 뿐이다. 일을 피하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스스로 가진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 맞다. 책을 읽기 전에도 그런 생각이 들곤했다. 내가 열심히 청소하고 준비하면 내가 없을 때 내 존재의 소중함을 알지 않을까. 그러니 열심히 하는게 스스로 좋다.며 다독거렸으니까. 결국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미루고 미루었다.


     #6. 오래가진 않겠지만 잠시나마 높은 정신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독서의 매력이 아닐까. 작가는 책을 재미로 읽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다양한 문법을 즐기며 자신을 성찰하고 남과 비교해보는 즐거운 시간이다. 책 읽기가 공부가 되어선 안된다. 

     얼마 전 한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주는 3요소를 보았다. 

    i. 사람 / ii. 상황 / iii. 책

    사람과 상황은 순간적 판단은 가능해도 스스로 선택할 순 없다. 그러나 책만은 스스로 선택하고 그 의미를 판단할 수 있다. 잠시나마 작가의 어깨에 올라가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 잠깐의 시간이 돌이켜보면 내 삶을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지금 내가 가지게 된 수많은 습관들이 그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로 이루어져있으니.


     #7. 박수근 화백 추모글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p.264. 내가 죽자꾸나 열중한 불행감으로부터 헤어나게 하려는 그다운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내 불행에만 몰입했던 눈을 들어 남의 불행도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내 열듬감은 내 자신의 불행이나 불리한 상황만 보기 때문이 아닐까.


    9. 10.

    나만큼만- 남을 아끼자.

    그게 열등감과 무기력을 해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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