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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잔혹한 전쟁의 담담한 서술.책 2013. 5. 26. 14:28반응형
5.20. - 5.21.
E.M.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잔혹한 전쟁의 담담한 서술.
주인공 파울 보이머는 19살의 젊은 나이로 선생의 권유에 따라 군대에 지원한다. 책 중에 20살부터 징집이나 4개월 정도 빠르게 지원하였다고 서술되어 있다. 1916년 독일의 병사로서 18세에 1차 세계대전을 겪은 E.M. 레마르크는 그 당시의 경험을 살려 책을 집필한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 역시 독일군 병사로서, 젊은 청춘으로서, 또한 뜨거운 피로서 전쟁에 참여한다. 책에 서술된 전쟁의 모습은 참혹하다. 선생의 권유에 따라 같은 반 친구들과 같은 부대로 전입 받아 전방에 투입된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나 둘 죽어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이를 주인공의 시점으로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다. 죽음으로 둘러싸인 전장이라는 공간이 사람을 이토록 무감각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주인공이 타인의 죽음에 의해 슬퍼하는 것은 단 두 번 나온다. 하나는 가장 소중한 전우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는 것, 이는 당연하다. 같은 편이고, 오랜 세월 서로 목숨을 의지했을 뿐 아니라 그가 어떤 세월을 살아왔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즉 그(친구)는 주인공과 숨결을 나누었고 주인공의 머리와 가슴과 눈 속에 들어와있는 인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프랑스군을 죽이며 깊은 슬픔을 느낀다. 전쟁터라는 공간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우리 아니면 적이기에 적군은 당연히 죽여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처음으로 긴 휴가를 다녀온 뒤였고 최전방과는 달리 고요한 고향의 분위기와 적의보다 사랑으로 가득찬 가족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래서 주인공은 그 적군 역시도 가족이 있고 과거가 있는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서로 언어는 다르고 입고 있는 군복 역시 다르지만 같은 인간일 뿐이다. 는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는 점차 전쟁에 지쳐간다.
잔혹한 전쟁에 대한 담담한 묘사도 좋지만 한 가지 더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이 점은 특히 우리나라 20대 남성이라면 모두 공감할 점인데 직업도 없는 학생에서 군인이 되는 과정에서 잃어가는 현실감각이다. 물론 우리나라와 이 책의 분위기는 매우 다르다. 지금 우리는 휴전 중이지만 주인공은 전쟁 중에 느끼는 것이니까. 주인공은 전쟁 중에 계속해서 학생 시절을 떠올린다. 오직 그것만이 그가 가지고 있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학생 때 배운 프랑스어, 플라톤, 수학. 그것들이 도대체 이 전쟁에서 무슨 소용인가. 오직 사격 솜씨와 체력 그리고 운이 필요할 뿐이다. 더군다나 40대 전우들은 전쟁이 끝나면 군인이기 전에 직업으로서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20대 청년들은 일상이 사라졌다. 학업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사랑하는 부인도 없다. 전쟁이 끝난다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하나! 그리고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우리의 과거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목할만한 점은 보통 살아있음을 의심하지 않고 존재를 의심한다. 나는 살아있지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나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반대로 물어온다. 나는 존재하지만 살아있는 것일까?
훈련소에서 불침번을 설 때 자꾸만 사회가 떠올랐다. 손에 잡힐 듯한 추억. 그 기억은 나와 끊기지 않았다. 내가 존재함을, 살아있음을 말해주는 기억이었다. 그래서 내가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이 계속 떠올라 기쁘고 가슴 아팠다. 1년의 세월이 지나 지금은 그때 그 기억들이 현실감이 없다. 아쉽게도 완벽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추억이 아니라 기억에 다름없다. 현재의 익숙한 공간과 생활 그리고 패턴에 물려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20대, 입대 전에 그리고 입대 후 군인일 때 한 번씩 읽어야 한다 생각한다. 우리나라 징병제도의 특수성과 과거 6.25 학도병들의 고난을 잘 담았다. 그리고 내 상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갑작스럽지만 군대는 무조건 가야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계기가 되니까.
p.32. …이 개념은 우리들의 눈에 비친 생활에 또 전쟁에 하나의 이상화된 거의 낭만적인 성격을 띠게 했다.우리들은 10주간의 군사 훈련을 받았으며, 이 기간 동안에 우리들은 10년간의 학교 교육보다 더욱 결정적으로 변했다. 우리들이 여기에서 배운 것은, 네 권의 쇼펜하우어보다는 잘 닦여진 단추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놀라고 다음에는 분개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 되어,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결정적인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고 체념했다. 즉 중요한 것은 정신이 아니고 구두솔이며, 사상이 아니고 조직이며, 자유가 아니고 훈련이었다. 우리들은 감격과 선량한 의사에 의해서 군인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마음속에서 그러한 것을 축출하도록 온갖 박해를 다 당했다.
p. 132. 옛날의 추억이 희망을 일깨우지 않고 슬픔을 - 무섭고 이해할 수 없는 우울을 - 환기시키는 원인은 이 정적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 옛날의 추억은 그때엔 사실로서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우리들에게는 이미 지나가 버린 하나의 다른 세계였다. 연병장에 있을 때는 이 옛날의 추억이 반항적이고 난폭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절만 해도 우리들은 아직 이 추억과 꼭 결부되어 있었다. 우리들과 옛날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떨어져 있기는 했으나 서로 손을 맞잡고 있었다. 우리들이 그러한 새벽의 빨갛게 된 하늘과 검은 숲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연습을 하기 위해 연병장의 황무지를 향해 행군하며 군가를 부를 때에도 나타났다.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어서 그 마음으로부터 떠오른 감명 깊은 추억이었다.
그러나 이 전방에서는 그러한 마음은 이젠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옛날의 일은 전혀 우리들의 마음속으로부터 떠오르지 않았다. - 우리들은 이미 죽은 몸이다.
p. 134. 우리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으리라. 그런데 과연 우리들은 살고 있는 것일까?
5.21.
다시 한 번 읽기를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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