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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과연 이상한 것이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책 2013. 3. 30. 11:08반응형
3. 20. - 3. 21.
박민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인간은 과연 이상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끝없이 비교하고 확인해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즉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인간이다.
책을 읽고 두 가지를 결심했다. 하나는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다시 읽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전공 공부를 시작할 것. 이상한 일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삶과 스펙을 동시에 떠올렸다.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본질, 즉 칠 수 있는 공만 치라고 말하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하는 삼미와 칠 수 없는 공도 칠 수 있게 만드는 전공 공부가 떠오른 이유는 책이 가진 관점 때문일 테다. 역시, 과연 인간은 이상한 것이군.
최근에 책을 읽으며 한가지 느낀 것이 있다. 과학이 이 세상의 사실을 알려준다면, 그렇다면 문학은 이 세상에 어떻게 이바지할까? 문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심어준다. 과학과 비교해서 말하자면 문학은 '진실'을 알려준다. 우리의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진실은 겉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욱 크고 빛난다는 것이다. 문학은 사람들에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관점, 즉 세계관을 심어준다. 그래서 나는 박민규님의 책이 좋다. 알고는 있으나 인정하기 어려운, 느끼고는 있으나 부정하고 싶은, 그러한 관점을 독자에게 선사해준다. 확실히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고 난 뒤의 나는 다르단 것을 느낀다. 세상을 바라보던 필터가 변화되어 세계가 바뀌어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부끄러움과 부러움에 대한 책이자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이 담긴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선언한다.
*아마도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최초의 소설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매운 비현실적인 소설입니다.
소설 감상에 들어가기 전에 은희경님의 책에 있었던 문구 2개를 먼저 보여주고 싶다.
예쁘긴 한데 전형적이다. 불특정 다수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쓰고 치장했다는 느낌 때문에 어딘지 천박해 보인다. 아마 처음에 남자는 저 여자의 세련된 전형성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예쁘다는 실감에 앞서, 저런 모습이 예쁜 거라고 끊임없이 세뇌하는 유행이라는 상업 패턴에 속았을 것이다.
사랑하게 되면 누구나 조금쯤은 마음에 드는 얼굴로 보인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얼굴이라는 것만으로 누구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얼굴이 마음에 들게 됐는지 마음에 드는 얼굴이라서 사랑하게 됐든지, 어쨌든 그 두 가지의 행복한 일치는 드문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에 드는 얼굴을 가졌다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지만 행복한 일이다.
먼저 A는 부끄러움과 부러움과 관련이 있다. 어느덧 우리의 미적 기준은 비슷해지고 있으며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의란성 쌍둥이'란 말도 있지 않나. 다 비슷하게 생긴 아름다움. 그리고 적절한 몸매. 절대 소수가 소유한 완벽에 가까운 - 절대 완벽한 외모란 없다. - 미모에 절대다수는 환희하고 절망한다. 즉 그들의 모습에 세뇌당하고 있다. 나 역시도 군대에 와서 오히려 눈이 높아졌다. 왜? 매일 뮤직비디오만 보니까. 그래서 자신이 가진 장점을 보지 못한 체 부끄러움만 느끼고, 반대로 TV에 나오는 이들과 주변의 잘생긴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진실로 겉으로 표현되는 '나'는 손바닥만 한 크기일 뿐인데, 이 우주를 통틀어도 그것보다 넓고 다양한 가치가 있는 내면 가치는 평가 절하되고 격하 당한다. 나는 눈도 작고 쌍커풀도 없지만, 내 왼쪽 눈꼬리 끝에 찢어져 있는 부분이 좋다.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나만이 가지고 있는 이런 특성을 좋아해 주는 사람 없나.
B를 이야기 하기 전에 C를 예로 들고 싶다.
*C.
사람 소개해줄까? 진짜 괜찮은데, 주변에서 몰라주더라.
왜, 그럼 니가 만나지.
아-. 우린 너무 친해져서 그럴 시기가 지났어.
C와 같은 이야기는 아마도 성격은 끝내주는데 소개해주기 조금은 부담스러운 경우이다. 책을 읽으며 작가의 말에 있듯이 내용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비현실적이게 느낄 수 없는 '현실'을 너무나도 잘 포착해두었다.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 유혹도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무엇보다도 첫인상이 가장 큰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첫인상은 그 사람의 의상, 미소, 장소, 분위기···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만 결국은 외모이다. 한때 이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기회란 없는가? 작가 역시도 작품의 포인트를 여기서 얻었다. 어떤 신체능력이나 재능도 아닌 외모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이외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증진시키거나 바꿀 수 없다. 얼마나 가혹한가.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요소에 대해 판단 받고 삶이 결정된다는 것은. 이 책에서는 그 절망감 - 누구나 한번은 느낄 - 을 한숨 나올 정도로 잘 표현했다. 그래서 B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의 이를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사이에는 마음에 드는 얼굴과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비현실적으로 읽어지고 또한 이런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A이든 B이든 C이든, 어찌 되었든 간 이 소설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끝끝내 그 따스함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조금이라도 세상을 박민규식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한다. 이것이 박민규님의 능력이다. 잠든 휴화산처럼 분명 속으로는 불타고 있는 문제를 겉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표현한다. 그러나 읽는 독자의 가슴에는 화산이 터진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화산에서는 불덩이 대신 자신의 삶의 파편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민규님의 능력 중 다른 하나는 언어의 모호함을 잘 표현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부끄러움과 부러움. 단 한 글자 차이인데 그 의미는 정반대이다. 그리고 소설의 흐름을 이끄는 주요 소재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이것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또한 아쉬움과 아까움의 차이. 책에서는 짧게 넘어가는 차이이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하였다.
p. 33. 모르겠어...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뭐가요? 지금 이 순간이 아쉬운 것인지...아니면 아까운 것인지... 결국 지나가버릴 이 시간에 대해 그녀도 나도 판단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지나온 삶이 아까울수록 인간의 기억은 아쉬워진다.
어쩐지 옛 인연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던 소설이다. 내 아쉬운 기억들.
이 책은 작년 9월부터 읽고 싶었으나 도서관에서 항상 대출 중이라 빌릴 수 없었다. '이 책은 빌릴 것이 아니라 사서 읽어야겠구나' 어느 순간 다짐했고, 지난 외박 때 우연히 울산의 '알라딘 중고서점'을 발견하고서는 중고 책을 구입하였다. 오히려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나에게로 왔다고 생각하니 더욱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평생 소장할 책이다. 책을 읽고 온전한 느낌을 그대로 전하기에 너무나도 방대한 느낌과 감정, 관점을 준다.
마지막으로 부러움에 대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말하고 끝내려 한다. 20살 때 중학교 은사님과 나눈 대화이다.
*
나그네 : 쌤, 저 20살인데 부럽지 않아요?
T : 아니, 외려 너가 날 부러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너가 겪고 있는 20살도 살았지만,
너가 겪지 못한 21,22…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으니까.
나그네 : !!
어쩌면 부러움과 부끄러움은 글자처럼 한 글자 차이, 아니 그것도 안 나는지 모르겠다.
p. 14. 스무 살의 여자 역시, 남자가 수신할 수 없는 전파와 같은 것임을 안 것도 꽤나 오랜 세월이 지나서였다. 실은 그녀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을 것이다. 젊음은 결국 단파 라디오와 같은 것임을.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모든 연애의 90%는 이해가 아닌 오해란 사실을... 무렵의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스무 살이었고, 좋든 싫든 연애의 대부분을 운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나이였다.
p. 37. 너무나 오랜 시간이 사막의 바람처럼 우릴 휩쓸고 지나갔다. 헤어진 모래처럼 서로를 찾을 수 없다면, 다시 저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 외엔 다른 도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이 다시 데려와 주기만을, 나는 기다리고 기다릴 것이다.
p. 48. 인간의 외면外面은 손바닥만큼 작은 것인데, 왜 모든 인간은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부분을 더듬고 또 더듬는 걸까? 코끼리를 마주한 듯 그 앞에서 압도되고, 코끼리에 짓밟힌 듯 평생을 사는 걸까?
p. 185.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을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p. 200. 놀이기구 앞엔 언제나 길고 긴 줄이 이어져 있었고, 둘 다
그런 줄 앞에서 두 말 없이 발길을 돌리는 성격임을 안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두 시간을 기다려 5분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하고 나는 얘기했었다. 그런 걸 거야.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꼭 타고 가야지, 그런 심리가 되는 거지. 두 시간 줄서서 5분 열차, 두 시간 줄 서서 5분 회전바퀴, 두 시간 줄서서 5분 바이킹...우와, 거의 하루인 걸. 한적한 느낌의 참으로 시시한 회전 커피 잔에 앉아 나는 생각했었다. 누구나
그럴 듯한 인상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생각도 들었다.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저 장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삶이 고된 이유는...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p. 302. 함께한 시간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닮아가고 흡수하고 있었음을... 좋든 싫든, 해서 서로에게 서로가 남아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우리가 있다는, 그리고 우리게에 내가 있을 거란 그 사실이 조금은 나를 기쁘게 해주었다.
3. 21.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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