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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4. 29. 의 방랑.여행/여행 2013. 5. 4. 18:18반응형
그리고 2010.9월부터 2011년 8월까지의 방랑.
지난 휴가때 친구들과 약속이 끝난 뒤 걷고 싶었다. 30일은 복귀이고, 친구들은 고시준비에 취준생이다. 답답하다. 답답했다. 에너지를 어디론가 쏟아 부어야지, 비워야지 새로운 뭔가가 가득차리란 느낌이 가득했다. 나는 걷고 싶었다. 걷는 행위를 통해 내가 나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1. 6호선 화랑대역 3번출구로 나와서는,
2. 공릉2치안센터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넌다.
3. 비선아파트 골목으로 들어가 서울여대 후문 앞을 지나 작은 레스토랑인 에플민트에서 다시 돌아 나온다.
4. 노원방향으로 올라가다 왼쪽에 원자력 병원이 보이면 그 골목으로 쭉 걸어가면 7호선 공릉역 방향의 길이 나온다.
5. 공릉역 2번 출구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화랑대역 4번 출구가 나온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거리를 걷고 싶었다. 걷길 꿈꿔왔고, 꿈에서도 걸었다. 자주 생각났고, 자꾸 생각났다. 로드뷰에서의 사진은 모두 대낮이지만, 나는 언제나 밤에 걸었다. 그래서 밤거리를 걷길 꿈꿔왔고, 꿈에서도 밤거리를 걸었다. 어두운 거리, 노란 가로등, 그러한 것들과 함께 추운 겨울 차가운 공기에 반해 막차를 놓치지 않기위해 뛰는 심장과 뜨거운 몸이 있었다. 나는 표현을 왜 이런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을까? 너무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지하철 막차시간 신경쓰지않고 5분 더보고, 그 5분간 걸어갈 거리를 뛰아가곤 했을까. 그리하여 가끔 지하철을 놓치기도 하여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고 그랬을까.
그래서 나는 새벽에 걷고 싶었다. 마침 자리를 파하고 화랑대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20분, 매번 거리에 걸어가던 그 시간이다.
막상 역에서 내리고 3번출구까지는 거리가 긴 편이다. 얼마나 기냐면, 가는 길에 지붕이 없는 통로가 있다. 3번 출구로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는 또한 얼마나 긴지. 저 거리로 나왔을 때, 누군가가 날 기다리고 있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항상 저기서 만났다. 약속장소였던 3번 출구. 베스킨 라빈스였던 저 건물은 빠리바게트가 되어있었다. 나는 잊으려고 가는 것인지, 향수를 느끼고 싶어서 가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변해버린 풍경을 보는 순간,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이미, 뭔가 생각하기엔, 그리워 하기엔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게 아닐까?
3번 출구에서 나와 우회전을 하면 공릉2치안센터가 나온다. 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나는 그 긴 횡단보도가 자꾸만 생각난다. 횡단보도의 길이에 비하여 건너는 사람이 너무 적은 거리. 어두운 밤에는 느낌이 다르다. 마치 세상의 길이를 제는 자의 눈끔처럼, 노란 전등이 줄줄이 켜져있는 언덕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신호는, 정말 짧았다. 같이 있어서 짧았나, 모르겠다. 하지만 항상 신호는 금세 바뀌었다.
겨울이면 얼어있던 거리. 북쪽이라 그런지 눈도 자주 왔고, 눈이 잘 녹지 않아 언제나 얼어있었다.
서울여대 후문. 이번에 지나가면서 나는 힐끔 처다볼 수 밖에 없었다. 21:00 이후던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금남이 되는 구역. 그래서 지나가는 행인으로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힐끔 봤음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길 양 옆의 전등탑과 나무들이 너무 인상깊었다. 머리에 바로 새겨지는 느낌이들었다.
애플민트. 3번정도 갔으나, 언제나 나홀로 남자였다. 가볍게 스파게티를 먹을 수 있는 가게. 여대 앞에 있다는 냄세가 확실하게 풍겨온다. 언제나 홀로 남자였기에, 뭔가 조심스러웠다. 23시이후에 가면, 모두 불이 꺼져있다. 겨울에는 바람이 골목을 따라 심하게 분다. 서울의 칼바람을 느끼게 해준 거리.
비선 아파트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있는 정류장.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은 아니고 내가 스마트폰이 없었다 -, 휴대폰에 번호를 저장해두고 막차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막차를 놓치면, 역까지 뛰어가야했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좋았었다. 나는 그렇게라도 보는 1분, 1초가 너무 좋았다. 버스를 기다리게 되는 날이면 항상 쪼끼쪼끼를 보았다. 언젠간 한번 가야지- 생각하고서는 한번도 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싸웠던 일이 많이 생각난다. 원자력 병원 고개에서 비선아파트로 가는 저 골목에서 심하게 다툰적이 있었다. 왜 나는 그렇게 어릴 때 만날 수 밖에 없었을까. 20살의 내가 미워지는 때가 생각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화를 내는 그 사람은, 그리고 그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던 나를. 그러고선 너무나 당당했던 나를.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소통을 해서 오해를 없애자고 말하고서는 서로 말만 나누는 것이 소통이라 생각한게 아닐까? 내 속마음이나, 내 고민거리에 대해서 말했던가?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서는 나를 사랑한게 아닐까?
* 고은 - 순간의 꽃 (작은 시편)
실컷
태양을 쳐다보다가 소경이 되어버리고 싶은 때가 왜 없겠는가
그대를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였다
이웃을 사랑한다며
세상을 사랑한다며 나를 사랑하고 말았다
시궁창 미나리밭 밭머리 개구리들이 울고 있다
가끔 사치를 부리기 위해 가던 레스토랑.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치? 라고 말하기엔 저렴했다. 아니 저렴하게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알바도 안하고 그 사람도 알바를 안했으니까. 그저 가진 범위 내에서 분위기 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소중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다. 나는 그 사람과, 그리고 사람들과 약속을 위하여 알바를 안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그러나 내게는 사람을 만날 돈이 없었다. 매일 먹은 삼각김밥, 부족한 전화요금. 그러한 삶 속에서 살아갔다. 물질적 가치보다 사람을 중요시 했다. 균형을 잡지 못한체.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나 못해주고, 맛있는 식당 한 번 못데려갔다. 그래서 매일 전화요금이 없어서 무료로 남은 화상전화로 통화하곤 했다. 무엇이 옳았던 것일까? 지금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정말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이 거리에서 느꼈다. 사라진 것이 너무나 많다. 정말 너무나 많다. 자연스레 이제는 비워야 하는 시기구나, 멈춰만 있다고 생각한 시간이, 거리가, 관계가, 그리고 나 자신이 이렇게 달라졌구나 생각되었다. 멈춰있는 듯 보이지만 흘러갔다. 흐른다. 시간은 지나간다. 그래, 관계도 지나간다. 영원히 있을 듯했던 기찻길.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끔씩 기차가 지나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영영 볼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그 처럼, 지나간 관계 역시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린 듯했다. 세상이 내게 선언하였다. 세상은 바뀌었다고.
또 다른 사치를 부릴 수 있던 곳. 미피. 마실 나가듯이 걸어나와 들리곤 했다. 여전히 있는가? 공덕역에서 바로 태릉으로 와서 확인하지 못했다. 더욱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공릉 본점 닭한마리. 처음 밥을 먹으로 갔던 곳이다. 처음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아무런 준비없이 태릉 입구행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어디로 갈지, 가면 알겠지. 가서 생각하면 되겠지. 나는 그런 20살이었다. 태릉 입구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지인들에게 물어봐서 결정한 닭한마리 가게. 당시에 나는 이런 것을 물어볼 수 있는 남자 선배가 그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마저 질투했다. 어렵사리 찾아간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유명한 가게여서 저녁시간이었던 그 시간에는 번호표가 필요했다. 우리는 당황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역 근처의 치맥집에 갔다. BKF. 무슨 의미일까? 지금도 모르겠다. 지독하게 술을 못마셨던 우리는 맥주 500cc한잔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선 -어쩔 수 없이- 그 날 손을 잡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잡는다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이였던가? 지금껏 못느껴본 설램과 행복을 느꼈다. 아- 이 사람도 살아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그 느낌. 살아있다. 우리는 살아있다. 살아간다. 살아가는 사람이다. 살아갈 사람이다. 사랑할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지하철 막차를 타기위해 태릉입구로 내려갔다. 이렇게 태릉에 오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할 다짐을 스스로 부여하였다.
모든 사진이 어색하지만, 이 사진만은 밝은 날이 어울린다. 내 머릿속의 나머지 13장의 이미지는 어두운 거리다. 하지만 이 거리는 밝았다. 역시나- 슬프게도 싸운 기억만이 뚜렷하고 또렷하니 새겨져있다. 그 사람은 평소에 몸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여름에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서 한의원에 다녔다. 준비하던 대회가 끝나고 밤을 지샌 뒤 첫차를 타고 나는 그 사람들 기숙사로 대려다 주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버스를 타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래서 중간에 버스로 갈아탔는데, 이 거리에서 그 사람이 너무 힘들어했다. 집까지 택시를 타지 않고 가는 것에 너무 힘들어하고, 아파했다. 나는 너무 미안했다. 미안하다. 앞으로도 미안할테다. 그래. 나는 그래서 현재라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첫차였기에, 나는 이렇게 밝은 거리가 너무 인상깊다. 오히려 새벽에 걸으며 느끼지 못한 감정을 로드뷰에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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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란 건, 남은 사랑의 기준이 되어버리기에 계속 해서 생각나는가 보다.
단단한 잣대가 되어버려 언제든 떠오른다.
어떤 경우엔 어떻게 반응했고, 저런 상황엔 저렇게 표현한 모습이 너무 깊이 박혀있다.
아. 갑자기 이 글을 포스팅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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