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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태엽감는 새,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책 2012. 12. 8. 13:12반응형
12. 11. 1. - 12. 11. 13.
무라카미 하루키 - 태엽감는 새.
#. 몰입도.
1인칭 소설에 이렇게 깊은 몰입이 있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세삼스럽게 깨달았다. 특히나 주인공의 태도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고, 우물에 갇혀있다는 상상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었다. 높인가 높아서 보이지 않으며, 매우 아래에 혼자서 덩그러니,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이 어쩜 이렇게 눈에 선한지. 더구나 그 고독감을 느낄 수 있으며, 하루에 10~20초씩 들어오는 빛 역시나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주인공처럼 언젠가 한번 우물에 들어가볼까···. 싶기도 하다.
#. 뜬근없음.
깊은 몰입 중간 중간에 뜬금없는 이야기들이 나오곤 한다. 이 책은 태엽감는 새에 대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있다. 에피소드에 의외의 개그 포인트가 있을떄도 있으며, 한 편으로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만든다. 이 뜬금없는 에피소드들이 큰 흐름과 연관 없는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구성된 것이어서 마음은 더욱 편안해지고 즐거워진다. 소설을 써보고 싶은 사람으로써 작가의 이런 아이디어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외부 세계와 내부 의식.
이 책을 읽다보면 '나'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끔한다. 나 역시 내 기억의 사각지대에 중요한 잊혀진 기억이 숨겨져 있지는 않는지? 나라는 존재는 외부 세계에서 축적되는 가치와 내부 의식의 본질간에 충돌은 없는지? 에 대한 의문들과 함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손가락 끝까지 순환하는 것에 대한 묘사를 읽고 내 몸속의 피를 느끼며 -갑자기 심장이 따뜻해지는 느낌- 육체와 의식의 관계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내 육체는 그저 껍대기 인가? 아니면 외부 세계와 내부 의식을 이어주는 완충지대인 것인가. 나는 육체로서 존재하는지, 의식으로 존재하는지, 계속해서 상상하게 된다.
책에서는 계속해서 육체가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과 의식이 더욱 커져버리는 상황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강한 신체와 바른 정신이 따로 필요한 건가.
#. 스토리의 흐름.
어찌 되었건 이 책이 독자에게 깊은 몰입감을 줄 수 있는 이유는 끊임없이 상상할 수 밖에 없음이다. 이 책에는 뭔가의 리듬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책을 놓칠 수가 없다. 게다가 깔끔하고 단아한 말투로서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해서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서 망각하고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리듬감에 쫓아, 리듬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앞서 말한 의외의 요소들에게서도 눈을 땔 수가 없다. 저 작은 사건이 전체 스토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실제 간단히 말하고 넘어간 이야기가 뒤에 또다시 언급되는 것을 보면 이 책에는 어떠한 리듬이 분명히 존재한다! (리듬감 관련, 작가에게 다가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일반적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판타지도 아니기 때문에-,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만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글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이 점이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아닐까?
#. 뛰어난 스토리 속 유효한 문장들.
이런 스토리 속에서 독자는 자신을 한번 쯤 되돌아보게 하는, 가슴을 울리기에 유효한 문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다른 하나의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책을 펼치면 만들어지는 새로운 세계에서 느끼는 경험. 작가만의 고민이 밀도 높게 압축되어 흘러나온 액기스 같은 말들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2권까지 읽고, 2012.11.2.)
모든 일이 마무리되고, 소설은 끝이 났는데 이렇게 공허한 느낌은 무엇일까? 결국 모든 일은 그렇게 되도록 운명지어진 것인가. 태엽감는 새는 운명의 지표이며 방향타인가. 소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지 않아서 공허한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흐름을 결정하는 전반적인 분위기. '나는 내가 맞는가?' - 무엇인가 빠져있는 듯한, 어떤 부분에서 소중한 것을 결여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 등장 인물은 해매고, 찾기 위해 방황한다. 주인공은 우물 속에 들어가보기도 하고, 길거리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모든 생각을 버려둔체···.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일탈이 우리 삶에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모든 것은 내려둔체, 직업·친구·취미··· 모든 것은 버려둔 체 온전한 어둠 속에서, 온전한 타인 속에서 자신과 대면하는 것. 진정한 자신을 만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결여된 소중한 것을 찾을 수 있으며, 다시 복구시킬 수 있을까?
주인공처럼 나도 가끔 생각한다. 내 삶에서 놓쳐버린 중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는지. 현재에 만족하다보니 잊고 있는 것이 생기지 않았는지. 이러한 고민에 가끔 지독하게 공허해질 때가 잇다. 군대에 들어오고 사회와 격리되고, 친구들과 연락이 안되면서 무엇을 놓쳤는지 알았다. 마치 군대가 소설 속의 우물인양 온전하게 나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언제, 누가, 어디서,무얼 했는지 알 수 있을 뿐더러, 누구와도 어디서든 연락할 수 있다는 안정감과 보고 싶으면 나가서 만나면 되는 따스함이 절박감으로 바뀌었다. 정말 절박하고 간절했다. 나에게는 이런 간절함과 절박함이 결여되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체 아무 선택도 안했던 것이다. 가끔 느끼는 공허함과 우울함은 절박한 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느낌에 나타난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흐물흐물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목숨을 걸고 선택한다. 그것이 나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인 것 같다.
세상을 움직이도록, 돌아가도록 만드는 태엽감는 새. 우리가 태엽감는 새가 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절박감과 간절함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선택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세상을 움직이는 태엽이고 싶고, 그 태엽을 움직이고 싶다.
2권, p. 152.아저씨는 처음부터 상당히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아요. 저어, 태엽감는 새님, 아저씨가 지금 말한 것 같은 일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해요. '자아, 지금부터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라든가 '자아, 지금부터 새로운 자신을 만들자.'라는 것 말이에요.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스스로는 잘했다, 새로운 다른 자신이 되었다, 하고 생각해도 그 껍질 밑에서는 원래의 아저씨가 있는 거고, 무슨 일이 있다면 그것이 '안녕하세요'하고 얼굴을 내미는 거예요. 아저씨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거 아녜요? 아저씨는 외부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생각 또한 외부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저어, 태엽감는 새님,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는데, 어째서 어른인 아저씨는 알지 못하는 거예요?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확실히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지금 그것에게 보복당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여러가지 것으로부터. 예를들면 아저씨가 버리려고 했던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버리려고 생각했던 아저씨 자신으로부터. 내가 말하려는 거 알겠어요?
2권 p 71
밤의 어둠은 아까보다도 농도가 짙어져 있었다.
정말 지나치게도 아름다운 문장이다. 너무 아름답다.
2권, p.64내가 정말로 오카다씨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오. 나는 내 자신의 인생을 어느 순간엔가 잃어버리고 그 잃어버린 인생과 더불어 40년 이상을 살아온 인간이오. 그리고 그와 같은 입장에 있는 인간으로서 생각할 때, 인생이라는 것은 그 와중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한정되어 있소. 인생이라는 행위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은 한정된 아주 짧은 기간이오. 어쩌면 수십 초일지도 모르오. 그것이 지나가 버리면, 또 거기에 나타난 계시를 잡는 데 실패해 버리면,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소. 그 후에 사람은 암울한 깊은 고독과 후회 속에서 인생을 보내야만 할지도 모르오. 그러한 황혼의 세계에서 사람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소.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덧없는 잔해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1권, p. 134
그녀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하여 어떠한 의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이상의 넓은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가질 필요가 있을 때면 그녀는 언제나 남편의 의견을 빌렸다. 그것뿐이라면 그녀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결정은 그런 타입의 여성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어쩔 수 없을 정도로 허영꾼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이라는 것을 가지지 않았으니, 타인의 기준이나 시각을 빌려 오지 않으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 두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하는 것뿐이다.
3권, p. 121
그는 잠시동안 거기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해 보려고했다. 그는 무릎 위에 얹혀 있는 자신의 두 손을 가만히 바라보고 나서 한 번 더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와 다름없는 세상이었다. 이렇다할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확시히 다른 세상일 것이다. 결국 자신은 지금 곰과 호랑이와 표범과 이리가 '말살되어' 버린 세상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 동물들을 오늘 아침까지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지금 바로 이 순간 오후 네 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병사에 의해 학살되었고 시체조차 이미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그 두 개의 다른 세계 사이에는 뭔가 커다란 그리고 결정적인 '어긋남'같은 게 있을 것이다. 또 ' 없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로서는 도저히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세상이 언제나오 같은 세상으로 보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것, 그러나 너무 작아서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
4권, p. 230
잠에서 깼을 때 밤은 잠잠하지는 않았어요. 밝은 달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아주 큰 달이 은빛 스테인리스 쟁반처럼 언덕 위에 두둥실 떠 있는 것이 보였죠. 손을 내밀어 글씨를 쓸 수 있을만큼 커다랗고 커다란 달. 그리고 창문으로 비쳐 드는 그 달빛은 마치 물 웅덩이처럼 방바닥 위에 하얗게 고여 있었어요.
하얀 달빛이 고여 있는 방바닥, 역시 너무 아름다운 공감각적 표현이다.
김은 곳에 빠져들어가는 느낌으로 읽어서 그런지 헤어나올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책 속의 비평가처럼 리뷰를 쓰면 좋겠지만 아직 마음의 소리가 내 귓가에 울리지 않는다. 아름다운 표현력과 깊고 방대한 상상혁으로 현실과 비현실, 과거와 현재를 묶어준 책이었다.
2012. 11. 13.
일상을 소중히, 완벽히 그러나 공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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