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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다가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책 2012. 12. 8. 10:19반응형
12. 10. 23. - 12. 10. 30.
무라카미 하루키 - 잡문집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소설을 쓰는 사람. 두려움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고 싶다. 과역 내가 '글'을,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러나 나만의 이야기와 문체로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하루키씨 역시 나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것 같다. <잡문집>을 통해서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과 취미, 글쓰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하루키씨의 소설을 읽은지 오래되서 그가 어떤 이야기를 던지는지 기억이 안난다. 다만 20살 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랜드>를 읽다가 너무 난해해서 포기헀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작가 개인의 성향을 이번 기회를 통해 느꼈으니 다음에는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본인 특유의 문체가 책에는 가득하다. 소설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상적 언어가 드러나기에 그런 것 같다. 배려심이 가득한 말투,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말투- 즉 일본 특유의 화和가 들어간 말투는 신선하다. 옆에서 말해주는 느낌이라까.
책은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시대의 글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특히 (음악에 관하여)와 (소설을 쓴다는 것)에서 하루키 씨가 얼마나 문예적인 기질이 많은지 알 수 있다. 젊어서부터 재즈를 즐겨들었고 그에 맞게 재즈에 대하여 방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소리를 구분하는 귀를 가지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하루키 씨의 음악적 스승이랄까, 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리듬감'이 부럽다. 하루키 작가만의 고유의 문체와 이야기는 이런 배경으로부터 탄생했을테다.
'리듬'은 무멋을 하든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리듬=페이스=패턴이랄까. 아직 글 속에서 리듬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을 배웠다면 책에서 리듬을 찾는 것이다. 이제 하루키씨의 책을 완독할 생각인데 그의 리듬을 느껴봐야겠다. ( 연속으로 하루키 작가의 소설을 3권을 읽었는데 리듬을 발견했다.)
잡문집이기에 특별한 독후감 줄거리가 없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하루키씨와 가까워지며, 작가로서 하루키보다는 개인으로서의 하루키를 만날 수 있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어쩌면 그의 문학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그의 문학적 거름이 된 문학작품과 음악을 더불어 즐길 수 있으니.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 작가는 은희경씨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외로움을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고 한다. 하루키 작가 역시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문체를 활용해 글을 쓴다고, 써나갈 것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세상을 느끼면서 자아가 경험하는 혼란스러움을 글로 풀어나가고 싶다. 나만의 이야기와, 나만의 문체로.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모두 같은 욕구를 느낄 것이다.
우리가 하루키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유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하루키씨만의 계속되는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덕일테다. 치열하게. 세상의 모순되는 것들과 미묘한 것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과의 거리감(가장 첫 이야기인 '굴튀김'에 관한 이야기에 나온다). 세상에 존재물들과의 거리감과 상관관계에 이야기하다보면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나'에 대한 깊은 이해와 확신이 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하루키씨의 라이프 스타일을 배우고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직업도 가져보며, 세상을 여행하고 다양한 곳에도 살아가는 모습. 세상을 여행하고 다양한 곳에도 살아가는 모습. 특히 자신만의 심지가 곧고 글에 대한 일관된 태도, 하나의 새로운 롤모델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하루키 작가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거나, 작가의 개인적인 삶이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한다.
p. 44.
글 쓰는 이의 역할은 하나의 결론을 전달하기 보다는 총체적인 정경을 전달하는 데 있으니까.
p. 50.
감히 말하자면, 아침에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은 벌레로 거의 변할 뻔 하다가 종국에는 변신하지 못한 카프카 <변신>의 주인공인 셈이다. 따라서 그들은 벌래가 될 수 없는 존재로서, '보통'의 한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또다시 재생산하여 되풀이해나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인 것이다. 벌레가 될 수 없었던 우리에게 그대로 계속 밋밋한 달걀귀신으로 남아 있을 사치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가면을 쓰고 옷도 갖춰입어야 한다.
여하튼 사람들은 그러한 밋밋한 달걀귀신의 상태에서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고, 자기 위치와 이름을 되찾고, 옷도 차려입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수염을 깎고, 아침을 먹고, 배변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각자 일상의 얼굴을 되찾아간다. 제로에 가까운 존재에서 자기 위치와 이름과 역할을 자긴 '보통 사람'으로 변신해 가는
p. 56.
우리는 실은 적당히 정리된 차용물인 자신과 차용물은 아니지만 잘 정리되지 않는 자신과의 기묘한 틈바구니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p. 80.
'꾸준히 써나가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지금 무엇보다 절실하게 통감하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곁가지가 거세게 흔들려도 근본의 확고함에 대한 믿음이 지금껏 나를 지탱해왔다고 ㅅ
p. 211.
나는 지금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조용했던 그 흑인 병사를 자주 떠올린다. 멀리 떨어져 고국을 그리며 카운터 한쪽 구석에서 소리 죽여 흐느껴 울던 남자의 모습을, 그 앞에서 조용히 녹아들던 온더록의 얼음을. 그리고 멀리 떠나간 그를 위해 빌리 홀리데이를 들으러 왔던 여성을. 그녀의 레인코트 냄새를.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젊고 필요 이상으로 내성적이며, 그런 주제에 두려워할 줄 몰랐던 나 자신을. 그러면서 누군가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적절한 말이라곤 도무지 찾아내지 못하는, 거의 속수무책이었던 나 자신을.
p. 425.
모든 세상사를 유효한 문장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제시하는 것이 소설가에게 요구되는 작업.
p. 453. 우리의 의식은 우리의 육체 안에 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 밖에는 다른 세게가 있다. 우리는 그러한 내부 의식과 외부 세게의 관계성 속에서 갈아간다. 그 관계성은 우리에게 종종 슬픔이나 고통이나 혼란이나 분열을 초래한다.
온 마음을 다해 재즈를 들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
그러한 작가의 책을 통해서 다른 수많은 책이 읽어지고 싶고, 수많은 노래가 듣고싶어졌다.
세상의 모순과 미묘함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2012. 10. 30.
재즈를 듣고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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