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마 히데키의「한글의 탄생」, 느낄 수 없는 한글의 가치책 2013. 7. 6. 12:50반응형
6.17. - 6. 21.
노마 히데키 - 「한글의 탄생」,<문자>라는 기적
*이전 감상문
(찌아찌아족과 영어공용화에 관한 생각)
#0. 첫 사랑의 객관적인 가치를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경험이 그렇듯 첫 경험은 다른 경험들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또한 다른 경험들을 평가하는 바로미터(Barometer, 척도)도 된다. 따라서 경험 이후의 삶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특정한 후각적 냄새나 특별한 미각적 맛처럼 단편적인 감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온머리로 들어와 인생을 적시고 피부와 뼈에 새겨지는 진정한 사랑의 경험은 결코 객관적이 될 수 없다.
아쉽게도 첫 사랑의 진정한 가치는 상실의 순간(혹은 이후) 느낀다. 인간의 감각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행복을 느끼긴 어렵다. 일상에서 멀어진 뒤에야 참된 가치(심지어 이상화까지)를 발현한다.
#1. 유사하게도 어떤 언어의 모어母語 화자가 자신의 언어나 문자의 객관적인 가치를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책에서 강조하지만 언어와 문자는 다른 차원이다) 언어와 문자는 세상에 존재하는 지식(몸)과 지혜(머리), 감정을(마음)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도와주는 도구이다. 이 도구를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자를 통해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초월할 수도 있다. 60년 전의 6·25 전쟁의 모습과 600년 조선왕조 건국 상황 역시 문자를 통해 전승되었다. 나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습득한 첫 언어와 첫 문자의 가치를 우리는 결코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슬프게도 첫 사랑은 잃을 수 있지만 언어와 문자는 상실하기 어렵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한국어와 한글의 가치를 모르고 살아가지 않나?
#2.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라는 저명한 한국어학자가 지은 「한글의 탄생」은 우리에게 한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다. 비모어 화자로서 객관적인 언어학적·언어사적·언어사회적 관점으로 한글에 대해 재평가한다. 모어 화자가 했다면 민족주의적이거나 지나친 겸손으로 발견 못 할 가치를 드러낸다.
#3. 한글과 한국어에 관해 이야기하지 전, 언어학적 시선을 잠시 깨쳐준다. '말과 언어 그리고 글'은 서로 다르다. 말이 <말해진 언어>라면 글은 <쓰여진 언어>다.
有天地自然之聲이면 則必有天地自然之文이니라.
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다.
정인지, 「훈민정의」 해례본 후서
지상에는 3,000개나 5,000개나 8,000여 가지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방대한 언어에 비해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문자체계는 수백 가지라고 하니(본문 50p)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언어가 먼저 존재하고 그 뒤에 문자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와 언어가 서로 다른 위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언어와 문자관계가 있다. 몽골어와 몽골문자이다.
p. 53. 몽골어는 주로 세로쓰기 몽골 문자로 쓰여졌으나, 몽골공화국 수립 이후 소비에트연방의 영향으로 키릴 문자로 표기하게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몽골문자를 부활시켜 공용화를 추진하고자 하였으나, 현재는 키릴 문자권이라고 할 수 있다.
몽골문자는 만주어를 표기하는데 사용되머 만주문자가 되었고, 권점이라 불리는 부호 등 만주문자의 새로운 형태도 만들어졌다.
외에도 찌아찌아족의 언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었던 것을 예로들 수 있다.
#4. 말과 언어와 문자가 같을 거로 생각하는 편견과 같이 우리가 언어에 대한 다른 오해는 무엇이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일 경우에 가지고 있는 흔한 편견. 그것은 바로 언어=민족=국가라는 환상의 등식이다. 언어는 개인에 속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조차 언어는 다를 수 있다. 언어, 민족, 국가 세 사지는 서로 대응되지 않는 디폴트default 상태이다. 그래서 국어나 외국어는 위험한 단어이다. 의도치 않게 소수의 인원을 배제한다. 예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배제한다. 그들에게 국어란 엄마의 언어인가 아빠의 언어인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외국어인가? 베트남 아빠를 가졌다면 그 아이는 한국어 모어 화자이자 베트남어 모어 화자가 되는 것이다.
#5. 말은 본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도구이며,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말이 매개하는 의미>이다. 그래서 발화된 말이 항상 의미로 실현된다고 할 수는 없다. 말은 의미가 되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말이 각각의 사람에게 의미가 <되는> 모습을 보인다. 말은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슬프게도 말이 의미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 습득한 말은 민족에 속하지도 국가에 속하지도 않고 개인에 속한다.
#5-1. 말이 의미가 되지 못하는 경우의 신뢰에 대한 단상.
마음과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른다. 이 마음을 '수혈'하기 위해 <말>이라는 도구를 이용한다. 말은 그 자체로 의미가 되는 것이 아니다. 대상과 현상, 존재와 감정 등을 추상화해서 뽑아낸 뒤 그 중 핵심적인 요소를 간추려서 어떤 단어(ex.사랑)로 정했을 뿐이다. 말이란 것은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이지만 그 자체가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말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도구이다. 내가 원하는 바를, 내가 느낀 바를 다른 사람의 마음에 완벽하게 수혈할 수 없기 때문.
이런 불완전한 도구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존재들 간에 믿음이 생길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사랑과 그 사람이 느끼는 사랑이 같을 수 있을까? 추상화된 단어는 개인에게 들어가 각자의 경험과 지식, 감정과 생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런 오해가 담긴 의사소통에도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까?
#5-2.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를 믿는 것이다. 그 사람의 언행이나 순간의 감정보다는 기억과 증거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누군를 믿는다! 고 말하였을 때 누구는 행복하다. 존재가 증명되었으니까.
누군가에게 친밀감을 느끼려면 매력도 중요하지만 시간과 횟수가 중요하다. 식에서도 알 수 있듯 매력은 초기에만 강력한 요인이다. 오래된 시간과 만난 횟수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증거가 쌓이며 신뢰가 간다. 즉 그 사람의 어떤 일관된 행동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서 말의 언어가 아닌 몸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신뢰는 (적어도) 말의 언어와 몸의 언어가 일치할 때 생긴다. 불완전한 도구를 메워줄 또 다른 불완전한 도구가 있는 셈이다.
#6. 훈민정음이 등장하기 전에는 우리말이 문장으로, 텍스트로 적힌 <에크리튀르écriture, 쓰기, 쓰여진 것, 문자를 의미하는 프랑스어>가 없다. 한 조각의 한국어가 아니라 전면적인 한국어 <문장>, 한국어의 <쓰여진 언어>가 없다. 훈민정음이 등장하기 전에는 중국의 한자를 빌려 한문으로 쓰거나 한문을 통사론적·형태론적으로 부분부분 수정해서 구결이나 향찰, 이두, 사서 차자표기 등 남의 문자를 빌려 사용했다. 우리만의 소리가 있는데 우리 문자가 없어 모든 소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했다. 특히 닭의 울음소리나 바람 소리같은 의성·의태어를 표기할 때 표의 문자인 한자의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7. 한자는 한글자가 온전하게 하나의 뜻을 품는다. 형·음·의 트라이앵글에 따라 한글자에 한가지 뜻, 한가지 음을 가진 모습으로 형성된다. 그래서 새로운 현상이나 대상을 발견하면 새로운 글자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한자에는 '육서六書'라는 자기증식장치가 존재한다. 세상에 수많은 사물과 현상이 존재하듯 한자 역시 몇만 글자가 있어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가 아니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여 말씀하셨듯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문자이다. 훈민정음이 없었을 당시에도 한국어는 존재하였다. 음은 있는데 형태가 없었다. 쉽게 소리를 표현하는 문자를 원했다.
#8. '음'을 문자로 만들기 위해 음성기관의 모습을 상형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형상화하기 위해 근원을 상형한 것이다. 여기에 용음합자用音合字 원리를 투입해 음을 나타내는 자모를 문자 세계에서 조합한다. 28개의 자모를 세상의 모든 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탄생한다. 한글의 경우 음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같은 단어인데 뜻이 다른 경우이다.
1. 같은 단어, 다른 뜻의 단어
A. 단모음 : 반음 없는 단독 모음 / 단모음 : 짧게 발음되는 모음
B. 다리 : 교각 / 다리 : 동물의 몸통 아래에 있는 부위
C. 차 : 車 / 차 : 茶
2. 고유어라 착각하는 한자어
* 혹시, 우선, 과연, 가령, 설령, 하필, 부득이···.
훈민정음 이전에는 한문을 이용했기에 한글에는 한자 DNA가 들어있다. 문장의 분위기나 단어를 보충하는 한자가 없다면 글쓴이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고유어로 착각하는 한자어도 많다. 음을 정확히 표현해주지만 뜻이 문자에 포함되어있지 않다. 언어는 뜻을 가지지 않는다. 뜻을 불러일으킨다.#9. 두 번째 읽지만 여전히 풀어내기 어려든 책이다. 생각이 많아진다. 내게 있어 당연했던 한글과 한국어가 소중해진 계기이기도 하며 문자와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많은 느낌들이 지워졌다. 여차저차 핑계로 책을 읽고 6일이 지난 뒤에 감상문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 감상을 자세히 적기엔 책을 베끼게 되고, 간단히 적기엔 알맹이가 없으니 어중간하게 여기서 끝내고자 한다.6. 27.기적을 풀어내지 못해 아쉽다.반응형'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란츠 카프카의 「성」, 책임에 대한 문제. (0) 2013.10.26 김성근의 「꼴지를 일등으로」, 함께하며 몸의 언어로 신뢰를 심어주는 리더쉽 (0) 2013.07.06 로버트&미셸 루드번스타인「생각의 탄생」,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0) 2013.06.22 톨스토이의 「부활」, 동물적 자아의 죽음과 정신적 자아의 부활 (3) 2013.06.22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자기 식대로 산다는 것 (1) 2013.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