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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름따라나그네,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2012. 11. 25.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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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홍세화 지음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 1995-03-0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1969년 서울대에 입학해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당하고, 79년 ...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2. 10. 15. - 12. 10. 18.

    홍세화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마음과 마음은 소리없이 맞닿을 때 더욱 아름답다.

     

    오래전 블로그를 시작할 때 '이방인(에뜨랑제)'로 작명하였다. 이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 방랑하는(방황하는이 아닌) 삶에 대한 이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방랑하는 삶, 즉 여행을 계획하고 꿈꾸었기에 더욱 맞아 떨어졌다. 현실과 일상에서 동떨어진,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책을 통해 밝히는 이방인으로서의 홍세화의 모습은 내가 철저하게 현실을 배제하고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까···. 눈물도 흘리지 않고,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았다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책이 말미에서 한 번 더 이야기하듯 똘레랑스(이하 관용)는 그의 입장에서 큰 충격이었을테다. 정이 많다는 (한국)사회에서 타인의 사정을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고 배척하는 것이, 모순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책의 저자가 이방인의 처지가 되는 것에는 분명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적 이데올로기라는 편견 아래, 또한 민주주의 사회 아래에서(당시는 아니지만) 상대방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제압했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는 그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그리고 군사적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채 이야기하는 것일수도 있다. 간첩이나 실제로 빨갱이들이 있었떤 시기니까···(하지만 이 역시 내 편긴일지도!) 하지만 이러한 역사와 전통이 이어져서는 안되는데, 남을 쉽게 의심하는 버릇 - 저 사람 역시 나와 다른지 몰라! - 은 사라지지 않은 듯 싶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내 몸 깊숙히 스며들어있다. 나는 쉽게 의심한다. 그리고 나는 배신당하는 상상을 많이하며, 마음을 쉽사리 얻지 못한다. 얼마나 가슴아픈지···. 그리고 이것이 심해서 내 자신을 믿지 못할 때도 많다. 어려운 이야기인데-. 항상 나는 내가 하는 행동에 이심을 한다. 작가처럼 나 역시 분열되어 있다. 수많은 나에게 감시당하며 제한당한다.

    수많은 나는 내가 아닌 부분도 있다. 바로 타인의 시선. 타인이 어떻게 나를 바라볼까. 사랑받고 싶어하는 개새끼마냐 타인의 호의를 바란다. 타인에게 나쁘게 평가받길 주저한다. 내가 수없이 많이 분열되어서 그런가보다. 진정한 나였다면 타인의 시선에 과감히 도전하고 스스로 결정한 선택에 만족을 한텐데, 분열된 나는 수많은 '나' 중의 오직 한 명만 만족하게 되므로 선택에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수많은 나 중에 나를 찾기 위해서는 없애서나 통합해야 한다. 나는 아마도 수많은 나의 호의를 얻기 위해 통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겠지···.

    그래서 생각한다. 나는,

    내 가슴이 원하는대로 조금씩 하자고. 내 편견에 가로막혀서 못하는 일들을 해보자고. 무리한 부탁도 해보고, 욕도 해보고, 비난·비판도 해보고 자주 연락 안하는 사람들에게 무서워서 하지 못한 연락도 해보고. 과연 남들이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한 만큼 욕을 먹을지 해보자고. 내 자신을 스스로 가두던 잘못이 진실로 나쁜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행동은 Simple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단순·명쾌야 말로 분열·복잡의 반대가 아닌가. 나를 무시하지 말고 21년ㄴ간의 생각이 누적되 발아된 내 마음의 결과를 의심없이 - 물론 논리적·이성적 판단이 필요하지만 - 실행해 보자고.

     

    조금씩 나를 부숴서 다시 나를 만들어 보자고.

     

    덜마른 지점토, 라는 표현을 친구가 했다. 다른 측면에서보면 나는 다 굳어버린 지점토가 아닐까? 내 안에 있는 관성을 멈출 수 없게 된 껍대기가 아닐까?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수고 부숴서 물을 부어 다시 덜마른 지점토 인형이 될 수 밖에.

    작가가 매우 대단한 '사고가'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를 말과 글로 표현하는 능력 아마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한 결과일테다. 나도 작가처럼 한 명의 인텔리로서의 삶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인텔리. 그래서 몸을 써서 돈을 버는 행위를 어리석은 사람들의 행위라고 (은연중에) 치부했었다. 내가 현실을 몰랐던 일이다. 그래서 나는 30만원 용돈 벌어타쓰면서 돈이 없어서 삼각김밥이나 처먹고 다니며 돈도 없이 학교에 다녔나보다.

    더욱 좋은 알바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알고서 낮은 시급의 일을 할 생각도 안했다. 낮은 시급 알바를 할 바에 친구랑 논다. 라는 생각이 컸고 이에 알바하면 친구랑 못만난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내가 돈이 없구나-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기회 비용'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현실을 포함하여 적용시킬 지혜는 없었다. 잘못된 비교는 잘못된 결과롤 남는 것이다.

     

    분열을 겪은 작가이고, 나 역시 많은 분열을 겪고있는만큼 공감할 수 있는 글귀가 많다. 내가 겪고 느낀 고민들을 이 사람은 뜨거운 고찰 끝에 결과를 얻었다. 아니, 냉정한 현실앞에서 느낀것이라 해야하는가. 인권-자유, 그리고 진정하 나에 대하여.

     

     

    이 책은 출간한지도 20년이 되어가고 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줄거리에 대해서 특별히 서술하지 않는다. 사실상 내 독후감은 줄거리를 담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내 감정들과 생각들을 풀어나가는 것이 첫 목적이고, 두 번째는 그 느낌을 '기록'하는 것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고.

     

     

    이 책을 읽고 난 뒤 내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지난주에 결심했던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결심이 어느새 사라지고 있는 찰나에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온 작가 앞에서 부끄러워서 일까. 나는 이미 개똥 수십 개는 먹은 것 같다.

     

    단순한 파리 여행 책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 여행할 수 있는 망명자로서의 삶을 진솔하고 당당하게 적어둔 책이다. 이러한 책은 실용서적과는 매우 다르다. 실용서적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목표가 맞춰진 반면 이 책은 작가의 삶을 노래한다. 작가가 삶에 대하여 고민하고 고민할 수록 문체는 작가를 닮아가서 한 없이 무거워질수도 때로는 한 없이 가벼울수도 있다. 문체는 작가를 닮는다. 이 책의 문체는 매우 담담하다. 그리고 진솔하다. 이 담담함과 진솔함이 만난 이 책은 그 자체로도 큰 매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살면서 언젠가는 마주할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관한 그 사람만의 결론까지.

     

    내 문체는 어떨까?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다. 하기사-. 남의 눈치 안받고 살기로 결심하자마자 이런 생각이라니. 그래도 이건 더 나아깆기 위한 조언을 구하는 거니까!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p.13

    뺏어온 것도 잘 보관하고 또 그 역사를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니 자기들 것에 대한 애착은 말할 나위도 없겠구나. 이미 많이 빼앗긴 우리들은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군.

     

    p. 111

    베르뜨랑은 그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다.

    설득하는 사회 - 강요하는 사회

     

    p.190

    당신은 별로 속아 살지 않았을만큼 영악한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이 항상 당신을 속일 수 있다는 피해망상을 갖고있다.

     

    p.208

    미떼랑 프랑스 대통령은, 자신의 철학은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않는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p. 210

    인간이 모두 똑같이 태어나지 않기 떄문에 평등 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며, 인간이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를 갖지 않기 때문에 인권 개념이 창안되어야 했던 것이다.

     

    p. 231

    나의 방황은 실존을 요구했다. 그것은 당연한 결론이었다.

    사르트르를 읽고 까뮈를 읽었다. 그리고 리스먼의 자아지향에 대하여 읽었다. 다른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내 삶의 원칙이 되었다.

     

    p.266

    나는 투철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이론가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어떤 정치적 욕구도 나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내 삶의 의미를 되새겼고 그에 충실하고자 했다. 나를 사랑하고 나 아닌 모든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분열에 저항하여 하나로 살고싶었다. 그것은 내 가슴의 요구였다. 그 뿐이었다.

     

     

    읽다보니 소설가 은희경씨가 떠올랐다. 자신의 고독함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글을 썼다는 그녀. 글을 쓰면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간 사람처럼, 홍세화씨 역시 글을 쓰며 연글을 하며 자신을 찾아간게 아닐까.

    두 사람의 공통점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자신'이라는 샘을 끝없이 개발하고 고민하고 다가가는 점이다. 본받고 싶다.

    진정한 나로서, 진정한 행위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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