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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절하고 비참하며, 울부짖는 필사적인 투쟁의 삶, MistyJJ의 <레시드>
    2013. 1. 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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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 - 1. 26.

    MistyJJ - <레시드>

     

     

     

    영웅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욕망. 현대에 있어서 욕망은 인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감정이다. 과거 먹기 힘들고 자는 곳과 입을 옷이 부족했던 시절에 우리의 욕망은 뚜렷하지 않았다. 그저 살기위한 본능이랄까. 욕망보다는 더욱 원초적인 감정이다. 점점 발전하여 의식주에 문제가 없는, 등 따시고 배부른 시기가 되며 우리는 욕망의 동물이 된다. 등 따시고 배부른 우리는 모두 욕망으로서 행동을 결정한다. 게임을 하는 것, 여자를 만나는 것, 일보다는 게을러지는 것, 조는 것, 누군가를 괴롭히기도 하며, 누군가를 돕기도 하는 것들. 모두 욕망의 발편이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 욕망의 인간이라는 표현은 왜 없을까? 있다손 치더라도 어색하다. 욕망과 인간이라니.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판단을, 저급한 취미보다는 고급 능력을 가지기 위한 고상적인 취미를 추구하며, 꼴리는데로 행동하기보다는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그렇기에 욕망의 '동물'이라고 욕망적인 '사람'을 표현하지 않을까?

     

     불교에서는 인간에게 다섯 가지 기본 욕망이 있다고 한다. 재물욕 · 명예욕 · 식욕 · 수면욕 · 성욕. 오욕五慾. 이 오욕을 얻어서 즐기는 것을 오욕락이라고 한다. 살아가다보면 삶이 이 오욕에 끌려다니는 경우를 많이본다. 누구보다 많은 옷을 가지고 싶고, 누구보다 존경받고 싶고, 누구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누구보다 안락히 지내고 싶으며,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 이 다섯 도둑에게 흥정 당하기만하는 나의 형편. 이 주체할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우리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지만, 행복에 다다를수는 없다. 그렇다면 욕망의 동물인 사람이 행복해지는 법은 무엇일까?

     

    욕망을 초월한 신념 하에 살아가는 것이다.

     

    레시드, 라는 소설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바로 신념에 목숨을 걸고, 때로는 그 신념이 흔들리기도 하는 진실로 인간에 가까운 영웅상을 보여주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분명 욕망을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필수적인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가진 신념과 생각아래 자신의 욕망을 초월한 행동과 생각을 할 수 있다.

     

     이 소설에는 '마수'라는 존재와 '씸테일'이라는 이종異種이 등장한다. 모두 인류를 위협하는 종족, 특히 마수는 욕망의 동물이다.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숨쉬고 살아간다. 이들의 욕망을 '쾌락원'이라 부르는데, 마수가 움직이는 이유는 쾌락원이 유일하다. 그래서 마수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신념을 등에지고 살아가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출간된 소설이 아니기에 인터넷으로 - www.munpia.com -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여건 상 인터넷을 많이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라 짧게 짧게 읽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아쉬움과 함께. 사실, 주인공 레시드의 태도는 매우 극단적이다. 마수와 함께하지도 않고 마수를 이용하지도 않는다. 오직 인간을 위해 마수를 배제한다. 그리하여 인격도 포기하고, 친구도 포기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 - 감정 마저 포기한다. 정말로 처절하다. 처절함에 가슴이 저려온다. 이런 외곬수적인 판단에 갈등도 일어나고 오해도 생긴다. 그렇기에 오히려 순수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에 끌린 이유는 내 자신에게있다. 나에게는 신념이 부족하다. 어떤 확고한 뜻이 없다. 무엇인가를 포기하면서까지 따라야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며 생각했다. 실제로 가능할까? 그래서 소설이 아닐까? 저렇게 극단적일 수 있는가? 아니면 신념이란 것은 저렇게 포기하고 처절할 때만 생기는 걸까? 그리하여 신념은 고통과 같이 하는 것일까? 인간의 자유스러움에 배제되는 감정이 아닐까?

     

     지리멸렬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삶은 지리멸렬하지 않을까. 이리저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지리멸렬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이 소설 속의 영웅이다.

     레시드의 영웅관은 매우 특이하다. 보통 소설에서 등장하는 영웅은 매우 아름다운, 이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많은 여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들과 사랑으 나누며, 태어날 떄부터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특별한 훈련 없이 강하고 계속 강하다.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도 많은 것은 얻으며 살아가고, 행복한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이고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영웅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 영웅관에 의문을 제기한다.

     

     ' 내가 희생해야할 것은 목숨이 아니었다. 목숨이 기회다. 목숨이 한 개 뿐이든 수십개가 생겨나든 그런 건 기회의 횟수가 다를 뿐이다. 진정 희생해야하는 것은 인격, 가지고 태어난 마음. 누구도 희생할 수 없는 것을 희생하는 자야말로, 영웅이라 불리기에는 적합하다. '

     

     심지어 희생해야 할 것은 목숨이 아니다. 바로 인격. 목숨은 그저 기회의 횟수일 뿐이다. 아니 도대체 그렇다면 누가 영웅이 되길 바라는가? 인격도 버리고, 목숨도 버리고 난 뒤에 되는 영웅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니-. 오히려 레시드는 이러한 영웅관을 가지고 있기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영웅이란 단어에서 아무느낌도 느낄 수 없다. 영웅이란 말에 어떤 권위도, 힘도, 갈망도, 동경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원래 영웅이란 이런게 아니겠냐고. 얻는게 있으면 잃는게 있는게 순리가 아닌가. 지독한 노력 없이 높은 위치에 오르는게 당연하다는 종전의 영웅관이 내 나태하고 아직 어린 태도를 보여주는게 아닌가.

     

     레시드의 전투 장면에는 마수가 인간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의 신념을, 그의 목숨을 건 지리멸렬한 싸움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싸워야하는지.

     

     ' 지금껏 많은 인간과 싸워봤지만, 여기까지 필사적인 인간은 없었다. 그래... 이기지못한다는 걸 알고 치욕을 받느니 스스로 죽겠다느니, 그런 웃긴 선택을 하는 인간은 있었지만 이렇게 끝까지 저항하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단지 목숨을 잃기 싫어서도 아니다. 진심으로, 이렇게 걸레짝같은 몸뚱이가 되서도 나를 죽인다는 일념으로.
     사람은 결코 넘을 수도, 뚫을 수도 없는 불가능한 벽을 보고 의욕이 무럭무럭 솟아날정도로 멍청한 생물이 아닐텐데. 어째서. '

     

     레시드는 처절하고 비참하며, 울부짖는 필사적인 투쟁만이 일생의 모든 것인 영웅을 노래한다. 강인한 힘과 절대적인 기술로 대표되는(=은의 영웅) 영웅이 아니다. 인간적인 영웅을 노래한다. 신념이라는 것 역시도 어찌보면 <자신의 만족=욕망>을 위한 행동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사람은 무엇일까.

     원하는대로 놀고, 원하는대로 먹고, 원하는대로 범하고 그냥 사람으로서의 도덕 같은건 다 내팽겨치고 흐뜨러지고 싶을때도 있다, 만 그런 거무튀튀한 욕망을 억누를 수 있기에 사람이 아닐까.

     누군가를 위해 아파할 수 있고,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진실된 마음이 있으며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사랑하며 아끼는 그런 마음이 사람의 마음이다.

     

     레시드에는 또다른 영웅이 등장한다. 은의 영웅 라피스와 흑의 영웅 레시드. 은의 영웅은 전형적인 영웅이다. 반대로 레시드는 보통의 존재에서 신념으로, 노력으로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나는 특별한 존재가 싫다. 아름다운 존재, 끊임없는 노력과 신념으로 진정한 '나'가 되는 존재가 좋다. 삼미의 정신보다는 조금 빡세지만!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영웅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특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영웅에 대해, 신념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영웅을 되길 바라며 영웅이 될 순 없다. 그 말은 영웅보다는 권위·힘·동경을 위해, 신념보다는 욕망을 향하는 것이니까. 진실로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 신념을 찾자. 아니, 어쩌면 신념을 바라는 내 태도 역시 신념이 될 수 있을테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문구를 적고 마친다.

     

     '다른 사람이 더 힘들다는 건 자신의 견디는 이유로는 사용할 수 없는거야.'

    1. 26.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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