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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월 3일, 고은 - 시의 황홀
    2015. 5. 4.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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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시의 황홀, 김형수가 엮은 고은의 시 100

     

     시를 읽을 때는 잇몸 치료제인 이XX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그러한 과정을 거침으로서 진정으로 시를 이해할 수 있고, 이해를 통해서 시의 황홀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씹다, 시를 씹는다는 것을 시를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과정이다. 소리를 내어 읽어보며 시를 어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것인지를 생각해보며 동시에 시어의 감정에 알맞은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뜯다, 시를 뜯는 것은 분석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수능 공부를 하듯이 긍정어/부정어를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 시를 썼는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국밥을 사 먹는다

    고은 - <무제>




     이 시는 고은 시인이 겪은 다양한 삶을 통하여서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은 시인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는 6.25를 겪기까지 한국의 다양한 고난한 시간들을 인생 전반에 걸쳐 경험하였다. 이러한 경험 속에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라는 이유 때문에 쉽게 목숨을 잃는 것을 경험하였고 목숨의 가치가 얼마인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 출처 : 유투브 강여) 이러한 경험들,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면서 알게 되는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가까워지는 것이야 말로 뜯는 과정이다.

     맛보다, 시를 맛보는 것은 자신의 처지에 그 시를 비춰보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과 진정한 공감을 나누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요하다. 하나 하나의 시어가, 그리고 그들이 모인 하나의 시와 시가 모인 시편이 과연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발견하는 과정이다. 즉 시를 자신의 삶에 투영시킴으로써 우려내어 그 진국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참새놈들이 되게는 시끌짝하다

    무슨 일인지

    이 세상에 짹짹거리지 않는 놈 하나 없다

    오냐 오냐 그래야 한다

    고은 - <봉모할아버지> 일부




    이 시를 역자 김형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큰 지혜는 크게 어리석다. 흐르는 물이 수없이 많은 강줄기를 품지 않고서 어떻게 바다에 이를 수 있겠는가. 때로는 수많은 차이와 다양한 소리를 끌어안아야 큰 것이 된다…(이하 생략)]

     이를 읽고서 최근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았다. 최근에 가지고 있는 모임에서 시끌짝한 일이 많다. 모임 사람들끼리 친해지면서 피어나는 애정이나, 정치적인 움직임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이들의 시끌짝 거리는 소리.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의견이 많다. 그러나 이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들 이야기를 주장하기에 바쁘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어서는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고 비꼬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바다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차이와 다양한 소리를 끌어 안아야 한다. 이 세상에 짹짹거리지 않는 놈 하나 없다. 그러니 오냐 오냐 그래야 한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주장해야 하는지...

     즐기다, 시를 즐기는 것은 시를 다시 읽어 보는 것이 아닐까. 한 때 가슴속에 들어왔던 시들을 다시 만나는 것은 큰 즐거움을 준다. 고은 시인을 처음 만났던 시집 [순간의 꽃]은 우연하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만났다. 이런 만남치고는 생각보다 향기가 짙었고 여러 시들이 내 가슴속에 남았다. 이 후에 이 시집은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 선물하기이벤트에서 친한 친구에게 선물로 주게 되었다. (그 친구는 이 시집을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이렇게 멀어진 시집이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시집을 우연하게 시의 황홀에서 만나게 된다.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고은 - <순간의 꽃> 한 토막




     이 시가 내 마음에 담기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서울사람이 된 이후일 것이다. 시의 황홀에서 김형수의 해석 중에 이러한 부분이 있었다.

    ['젊은 날 갓 상경했을 때 나는 봉천동 반지하 방에서 서울 사람이 되었다...']

    나는 언제 서울사람이 되었을까?

    나는 젊은 날 대학교 기숙사에서도 살았고, 고시원에서도 살았다. 그리고 사촌형의 원룸에 신세 졌던 적도 있다. 나는 사촌형의 원룸에서 서울 사람이 되었다. 고향이 아닌 타지라는 것에 대한 감정, 지금까지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보내왔던 곳에서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만나게 되었다.

    친하던 친구들과의 잠시간의 이별, 사랑하던 사람과 1년과 만나다 헤어지게 된 일, 그리고 내 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던 일. 그러한 것들이 나를 서울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낯선 도시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 곳을 걸어다녔다. 이를 통해 나는 서울의 아름다움도 알게 되었지만, 밤의 고요함과 붉은 전등의 황홀함...그리고 결코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리란 낯선 감정도 느꼈다.

     이러한 감정을 배우고 난 뒤에야 나는 어두운 밤에 노란 백열전구가 비춰주는 양재천 산책길을 걸어가며 느꼈다. 전등과 나무들이 나를 바라보는 느낌, 이 세상엔 절대적으로 홀로인 것 같으면서도 또한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모순된 생각에 나는 더욱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어찌되었던, 이 시집은 고은이란 시인이 50여년간 쓴 시들 중에 단 100개를 추려내었고, 게다가 약간의 해설까지 덧붙여 놓았다. 그렇기에 고은이란 시인을 알고 싶다면, 그리고 시가 어려워서 해석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

    어젯밤 전국의 해변

    그 파도 소리들을 누가 들었는가

    각자 제 고장의 항구에서

    제 고장 사투리의 파도 소리 들은 자여

    오로지 너의 음악만이 복받아라

    <해변의 노래 일부>

    해석 : 모든 생명은 각자에게 고유한 촛불을 켜놓고 있다. 초원의 유목민들은 자기가 키우는 말이 어느 지역의 풀을 뜯느냐에 따라서 마유주의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물굽이가 다르고 해협과 유속이 달라서 생기는 파도 소리도, 사람의 입맛도, 사랑의 향기도 저마다 사투리를 갖는다. 어떤 시인은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서 운다.”했다. 피장파장.

     

    /

    참새놈들 되게는 시끌짝하다

    무슨 일인지

    이 세상에 짹짹거리지 않는 놈 하나 없다

    오냐 오냐 그래야 한다

    <봉모할아버지> 일부

     큰 지헤는 크게 어리석다. 흐르는 물이 수없이 많은 강줄기를 품지 않고서 어떻게 바다에 이를 수 있겠는가. 때로는 수많은 차이와 다양한 소리를 끌어안아야 큰 것이 된다. 봉모할아버지는 시간의 대륙을 완주한 자의 가슴을 가지고 있다. 천 개의 어린 시절을 모아서 광활한 노년의 대지를 얻었나 보다.

    /

    누우면 끝장이다

    앓는 짐승이

    필사적으로

    서있는 하루

     

    오늘도 이 세상의 그런 하루였단다 숙아

    <순간의 꽃> 한 토막

     

    누구의 생이나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다. 각각의 목숨 앞에 배당된 이 곤혹스런 무게를 정직하게 견뎌내는 삶의 자난함과 눈부심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그래서 때론 고통이 나를 찬란해지도록 물들이기도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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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길은 싸뭉에서 진 사람인가 통 말이 없었다  - <이화령>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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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되어

    밤하늘 속

    머나먼 길 건너가는

    기러기 날개 지치고 지치는 뼈만 남은 길

    <누군가 묻더라> 일부

    사랑하는 이여, 하늘의 별은 언제나 독자적인 별자리 속에서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로운 상태를 만들지만, 사실 그 기쁨 그 외로움이 별빛에 담겨있었던 것은 아니다. 별을 바라보는 자의 저 뒤쪽 어디, 존재의 알 수 없는 그늘에 숨어있다가 섬광처럼 느닷없이 기습해온 것, 오직 보았던 자가 혼자 간직해야 할 무엇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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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매기는 바다를 잃어버렸다

    마구 소리쳤다

    갈매기 2 12세 혹은 1302……

    <죽은 시인들과의 시간> 일부

    미국의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의 문장에서 고은의 눈빛을 읽은 적이 있다.

    아무도 바닷가에 서서 바다의 운동이 옛날에는 어떠하였고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물어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과거보다 미래가 더 발전해야 한다는 이상한 꿈을 신봉한다. 고은은 그걸 이데올로기라 할 것이다. 인간의 감정에서 자연을 빼앗아간 주범.

    /

    누님께서 더욱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을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코 누님이야말로 가을이었습니다

    찬 세면 물에 제 푸른 이마 잔주름이 떠오르고

    세수를 하고 나면 가을은 마치 하늘이 서서 우는 듯했습니다

    멀리 기적 소리는 확실하고 그 위에 가을은 한 번 더 깊었습니다

    <사치> 일부

     고은의 시에서 현상학을 느낄 때가 많다. 오늘은 누님이 왜 저렇게 예쁠까, 하고 생각해보니 가을이 와있었다. 가을 때문에 누님이 예쁜 게 아니라 누님이 예뻐서 문득 가을이 와있던 것을 깨닫는 것이다.

    /

    여름내 우거질 대로 우거진 풀 다 말라버렸구나

    서슬찬 억새 댕댕이 개망초 박주가리들도

    백 년을 살지 않고 단 한철로 다하였구나

    <송내 가서> 일부

    떡잎 상태일 때는 풀과 나무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오뉴월이 되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나무를 덮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찬바람이 불면 풀은 말라서 소멸하기 시작하고, 겨울이 오면 완전히 제 모습을 잃어서 이듬해 봄에야 다시 떡잎으로 돌아온다. 그에 반해 나무는 성장이 더디지만 겨울에도 나이테를 남겨서 이듬해 봄이면 전년도에 성장을 멈춘 자리에서 다시 싹을 틔운다. 까닭에 풀은 숲이 되지 못하고 나무는 숲이 되는 것. 풀과 나무는 같은 땅에서 얼마나 얄미울까.

    /

    눈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

    그것도 통 모르는 여관

    새벽꿈 가운데서

    나는 광선의 오지라는 말을 지어냈다

    <> 일부

    젊은 날 갓 상경하였을 때 나는 봉천동 반지하 방에서 서울 사람이 되었다. 이제 어엿한 도시인이 되었는데도 늘 바깥 풍경을 모르는 벽지 사람이었다. 특히 거리의 날씨로부터 버려져있는 느낌.

    내 외로움에는 언제나 햇빛이 들지 않았다. 고은의 <>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 깊고 깊은 오지의 고독함을 다시 맛본다. 광선의 오지, 빛이 닿지 않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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