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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 08. 30.) 롤랑 바르트 - 사랑의 단상
    2012. 11. 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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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단상 (문예신서 178)

    저자
    롤랑 바르트 지음
    출판사
    동문선 | 2004-11-2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구조주의자, 후기 구조주의자이자, 현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2. 08. 23. - 12. 08. 30.

    롤랑 바르트 - 사랑의 단상.

     

     

     

     

     

     

     

     

     

     

     

     

     

    그것은 말(parole)의 자리를 읽게 해준다.
    말하지 않는 그 사람(사랑의 대상) 앞에서 혼자 마음속으로 사랑스럽게 말하는 누군가의 자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머릿속에서 늘 돌아다니며, 새로운 교섭을 시도하거나 자신에 맞서 음모를 꾸미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의 담론은 우연하고도 하찮은 기회에 그에게 다가오는 언어의 번득임으로만 존재한다.
    이런 담론의 파편들은 우리를 '문형(文形, figure)'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스쳐가는 담론 속에서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것, 즉 언젠가 읽고 느꼈던 것에 의해 문형을 잘려진다. 그리하여 문형의 윤곽이 그려지고 (하나의 기호처럼) 기억되어진다. "이 얼마나 맞는 말인가! 난 이 언어의 장면을 볼 수 있어"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하나의 문형은 성립된 것이다.

    언어, 자체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언어의 기호화>. ♡모양의 기호가 사랑, 심장을 나타내고 ★모양이 별을 나타내는 것처럼, '근사해'라는 단어(문형·기호)가 수 많은 의미를 가진 것 처럼, 모든 단어들이 수 많은 이미지를 가진 듯하게 느껴졌다. '단어' 하나 하나의 뜻·느낌에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다만 경험이 부족한 탓에 공감할 수 없는 문형도 많았고, 번역 상의 오류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기에 후반에는 집중하기 어려웠다. 일어(日語)나 한자의 경우에도 영어·프랑스어로 표시하였기에 우리 언어의 다의성에 의해 해석하는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앞서 말(parole)의 경우에도 馬인지, 言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사전을 옆에 두고,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사랑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의 향수를 맡으며 읽기에 좋은 책이다.

    특히 하찮은 것, 사소한 것에 상처받아 울림이 생기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 너무나 공감되었다. 읽는 도중 간간히 미소를 떠오르게 만드는 책이였다. 표현하기 힘든 미세한 감정과 느낌들을 너무 잘 표현해주었다. '언어학'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아마 60%정도밖에 흡수 못한것 같다. 바르트는 '언어'를 어쩌면 '신'처럼 생각했는지도···.

    p.18

    어떤 감정의 상태를 말하고나서 그냥 멈추어 버리는. 그 역할은 이미 채워진 것이다.
    문장 깊숙이에는 '언어의 환각(언어는 인간 의식에 선행하는 것=무의식)'같은 그 무엇이 있다.

    사랑 이야기(혹은 모험)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과 화해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공물(貢物)이다.

    책 속에는 수많은 문형이 존재하지만, 내 가슴을 울린 문형 4 가지만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p. 30

    부재 : 유보된 자.

    사랑의 부재는 일반통행이다. 그것은 남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지, 떠나는 사람으로부터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그러므로 부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주체의 자리와 타자의 자리가 교환될 수 없음을 단번에 상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을"

    이 것은 요컨대 놀라운 상황이다. 그 사람은 지시물로는 부재하지만, 대화 상대로서는 현존한다. 이 이상한 뒤틀림으로부터 일종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가 생겨난다. 나는 지시의 시간과 담화의 시간 사이에 처박혀 꼼짝 못한다. 당신은 떠났고(그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는), 또 당신은 여기 있다(내가 당신과 말하고 있으므로). 그러면 나는 현재가, 이 어려운 시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고뇌의 순수한 한 편린이다.

     

    '부재한다.'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정확히 그려졌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지만(존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떠남)-, 사이의 고뇌와 괴로움아닐까.

    p. 38

    근사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자신의 욕망의 특이함을 이름짓지 못하며 조금은 바보같은 이 '근사해'라는 말에 귀착한다. 수많은 지각 현상이 갑자기 눈부신(눈이 부시다는 것은 결국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인상을 형성하러온다.

    어떤 괴상한 논리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인지한다. 동시에 이 전체는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여분의 것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의 전부가 미학적인 영상을 산출한다. 그는 그 사람이 완벽하다는 사실에 찬미하며, 또 그렇게 완벽한 사랑을 선택한 자신을 찬미한다. 그는 사랑의 대상이 이런저런 장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모든 것 때문에 사랑받기를 원한다고 상상하며, 이 모든 것을 텅 빈 단어의 형태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란 축소되지 않고는 목록에 끼일 수 없는 것이기에-. '근사해'란 말 안에는 감정의 모든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특징도 머무르지 못한다.

     

    내 욕망의 대상은 수백만 중의 하나이므로 특이함을 가진다. 그러나 특이할 수록 이름 짓기는 힘들어진다. 이러한 언어의 실패로부터 '근사해'라는 말이 나온다. 근사한 것은 근사하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 욕망의 특이함을 보여준다. 근사해, 그것은 유일하기 때문에 내 욕망이라는 말이다.

    p.62

    아포토스 :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아포토스라고 인지한다. 예측할 수 없는, 끊임없는 독창성으로 인해 분류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빛나는 독창성 앞에서 나는 자신을 '아포토스'라고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분류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때로 이 고르지 못한 이미지들의 유희를 정지시키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독창성의 진짜 처소는 그 사람도 나 자신도 아닌, 바로 우리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쟁취해야 하는 것은 독창적인 관계이다. 대부분의 상처는 상투적인 것에서 온다. 모든 사람들처럼 사랑해야 하고, 질투해야 하고, 버림받아야 하고, 또 욕구불만을 느껴야 하고 등등. 그러나 독창적인 관계일 때에는 상투적인 것은 모두 흔들리며, 추월되고, 철수한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질투 같은 것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

    장소도, 토포스(topos)도, 어떤 '결론'이나 '담론'도 부재하는 이 관계에서는.

     

    p. 70

    감추기(검은안경). 심의적(deliberatif)문형.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게 그의 사랑을 고백해야 할지 어떤지를 자문하는게 아니라, 정념의 혼란을 어느정도 감추어야 할 지를 자문한다. 그의 욕망, 절망, 간단히 말해 그의 지나침을.

    내가 괴로워한다는 것을 슬쩍 알리기 위해, 거짓말하지 않고 감추기 위해, 나는 이제 저 엉큼한 연역법을 사용하려 한다. 즉, 내 기호 체계를 분리하려 한다. 언술적인 기호는 침묵하고 위장하며 속이는 임무를 맡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내 감정의 지나침을 결코 '말로는'하지 않을 것이다. 고뇌의 황폐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나는, 그러므로 그 고뇌가 지나가면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것이기에 안심할 수가 있다.

    언어의 힘. 나는 내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특히, '말하지 않는 것조차도.'
    내 언어로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내 몸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메시지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그럴 수 없다. 내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든간에, 그 사람은 내 목소리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나는 거짓말쟁이이지, 배우는 아니다. 내 몸도 고집 센 아이이며, 내 언어는 어른이다.

     

    표현할 수 있음에도 표현하지 않고 있을 때도 있지만, 표현하고 싶지 않음에도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수줍음과 부끄러움. 설램과 실망. 우리의 몸은, 눈은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투시한다. 이런 우리의 상태를 언어로서, 글로서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부럽고 존경스럽다.

    p. 305

    기호,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람을 증명해 보이려거나, 혹은 그 사랑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확인 해 보고 싶을 때면, 어떤 확실한 기호 체계도 수중에 갖지 못한다.

    기호는 증거가 아니다. 누구나 거짓 기호, 혹은 모호한 기호를 만들 수 있기에. 그리하여 우리는 역설적으로 언어의 전지전능함 쪽으로 되던져진다. 그 어떤 것도 언어를 보증해 주지 않음으로써 나는 언어를 최후의, 유일한 보증인으로 간주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나는 더 이상 해석을 믿지 않으려 한다.' 나의 그 사람으로부터 오는 말은 모두 진실의 기호로 받아들여 내가 말할 때 그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지 어떤지는 의문시하지 않으련다. 바로 여기서 '선언'의 중요성이 비롯된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그의 감정의 공식적인 표현을 끝없이 탈취하려 하며, 또 내편에서도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계속 지껄인다. 그 어떤 것도 암시나 점술 따위에는 맡겨지지 않는다. 무언가가 알려지면 말해야만 하고, 또 그것을 일단 말해진 이상 일시적이나마 진실이 되는 것이다.

     

    경상도 남자라 그런가 나는 '넌 사랑한다.' 라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그런 마음이 마음속에 충만하더라도 표현하지 않는다. 내 몸을 통해 표현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 역시 중요한 것이다. 상대방도 내가 던지는 수많은 기호들을 해석하는데 급급하다가 혼란에 지치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 역시 기호보다는 진실의 선언을 택하련다.

    난 널 사랑한다.
    문장도, 언표도 아닌 그 대로의 말. '사랑' 이것을 어찌 글로 나타낼 수 있으리. 오묘하고 신비로운, 나만의, 당신을 향한 마음을.

     

    '난 널 사랑해'가 더 깊어진

     

    사랑의 단상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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