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Étranger

 


철학의 위안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청미래 | 2012-04-0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알랭 드 보통이 전하는 일상에서 접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12. 08. 01 - 12. 08. 03

알랭 드 보통 - 「철학의 위안」

 

한줄 평 : 현대 철학의 맛! 처음 느껴본다. 그림도 많고. 하지만 내공이 부족해서 좋은 양분이 내 위를 덮은 것 같지만,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다.

 

 

 

 

 

 

 

 

 

 

딱히 힘든 일도 없지만 노란 커버에 '철학의 위안'이란 책을 보자마자 주워오게 되었다. 책은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주지 못한 것 같기도. 지금은 몹시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바로 '적용'이라는 것. 니체가 '쇼펜하우어'에 빠져있다가 나폴리의 소렌토에서 '자신이 인생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이미 읽어있었다.'라는 것을 느낀 뒤로 '고통'이 '행복'과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것처럼 나도 무언가를 느꼈으면, '적용'에 이르러야 함을 느꼈다.

 

-(본문 중)

쾌락과 불안은 서로 단단하게 묶여 있기 떄문에 한 가지를 가능한 한 많이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불가피하게 다른 한 가지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당신은 선택을 해야한다. 불안을 가능한 적게 경험하여 고통없는 시간을 가지던지, 형언하기 어려운 쾌락과 환희를 즐기면서 그 대가로 불안을 가능한 많이 겪든지.

 

 

니체에 관해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꼈는데 나는 (책을 읽기) 이전에도 성공을 위해서는 고통 -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범위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평소처럼 작은 일에 대해서는 고통(노력)이 필요 없는가? 생각을 해보았다. 집이 파산이 나서, 지독한 고통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분명, 회피할 것이다. 혹은, 극복하지 못하거나.

작은 고통에도 회피하고 있으니 ㅡ 여기서 회피는 깊게 생각만 하고 넘겨버리는, 이성적인 판단 하라면 좋은 반응(결과)를 행할 것을 미적지근하게 하는 것.

 

항상 생각하고, 항상 바란다. ㅡ 내가 좀 더 생각하고 행동하길, 좀 더 이성적이고 냉정하길.

 

책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안의 대상

인기 없는 존재 

가난한 존재 

좌절한 존재 

부적절한 존재 

심심한 존재 

어려움에 처한 존재 

 철학자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스토아)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위안 

지행합일 

올바른 인식 內 쾌락 

아파테이아 

육체와 본능의 힘 

생에 대한 의지 

고통 없는 행복 없음. 

 

역사 순서대로라서 '철학사'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뿐더러 요즘 정의하려 노력하는 '행복함'의 요소라던가 삶의 방향 ㅡ 의지·잠재력·쾌락과 고통에 대한 인식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쇼펜하우어의 부분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었다.

 

-(본문 중)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이 우리를 낙심하게 만들 때, 본래 계획에는 행복이라는 것이 절대로 없었다. 단지 삶에 대한 의지 (Wille Zum Lebem)이 서로 이끌리게 했을 뿐 (중화이론) 삶에 대한 의지가 사라지면, 종의 의지가 충족되고 환상이 깨지게 된다. 우리는 두더지와 달리 예술과 철학을 즐길 수 있다. 예술가들과 철학자들은 우리가 느낀 것보다 더 통렬하고 더 지적으로 드러내준다.

 

이런 내용인데,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적 성격이 있다보니 읽다가 지쳐버렸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지쳐있다.(읽고 느낀 것은 많으나, 쓰기가 싫다.) 쓰면서 스스로를 비웃고 있다. 하여간 쇼펜하우어의 내용을 제외하고는 내 삶에 적용시켜도 될만한, 아니 적용시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차분하게 정리해 보겠다.

 

《1. 인기가 없는 존재를 위하여》

-(본문 중)

타인과 대화할 때 내가 자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을 밝하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타인을 즐겁게 해주려는 욕망에 나는 우습지도 않은 농담에도 크게 웃는다. …. 이는 호의를 얻으려는 무분별한 욕망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나는 대다수 사람들이 신봉하는 관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의문을 품지 않았다.

- (본문 중)

소크라테스는 대중으로부터 인기가 없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유죄판결 앞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 그것은 다름아님 철학이었다. 끝까지 이성적으로 남을 수 있는 신념은, 즉 비난에 직면할 때면 흔히 보이기 쉬운 병적인 흥분이 아닌, 확신을 부여하였다.

 너무나도 내 모습과 같고, 내가 바라는 모습과 같아서 책에 꽂혀버렸다. 나도 내가 잘 웃는 것은 좋지만, (호의를 얻으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하지만 지금껏 내가 사람들에게 쉽게 호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 현실과 이상이 대립한다. 사실상 나는 남이 나에게 호감이 없는 게 무섭다. 어렸을 때 트라우마에서 비롯되는 건가…. 이후에 사회생활에 특별한 문제가 한번도 없었다. 무의식 속에 무서움이 숨어있다. 그래서 남들에게 싫은 말 ㅡ 의견을 부정하고 ㅡ은 못하고, 먼저 배려해주고, 내가 양보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다. 최근에 와서야 안 좋은 버릇이란 것을 깨달았다. 해야 할 것을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관념을 쉽게 믿어왔다. 주변 사람들의 말 中 그럴싸한 것들은 내 신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신념은 쉽게 흔들리고 자신감이 없다.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동적인 삶, 체계적인 사고를 하지 않은 채 인생을 사는 것을 소크라테스는 도자기를 구우면서 그 기술적 과정을 모르고 있거나 따르지 않는 것에 비유했다. 직관에만 의존해서는 훌륭한 도자기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물며 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 더욱 복잡한 일을 어떻게 근거나 목표에 대한 지속적인 반성 없이 수행할 수 있는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하지 못하는 게 '논리'가 부족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한 논리로, 내가 인지하고 있지만 실수하고 놓쳐버린 부분을 논리적으로 공략할 때 비로소 진실로 내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

 

-(본문 중)

 진실과 인기없는 것의 관계  ㅡ. 우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어떤 반대에 봉착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을 오류라고 확신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우리를 초조하게 하는 것은 반대하는 사람 수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내세운 이유가 얼마나 훌륭한가이다.

-(본문 중)

 모두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자신의 실제 사이의 간극 떄문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진실과 동의어로 보는 것은 인기가 없는 것을 오류의 동의어로 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다. 내가 실제 어떤 의도로 행위를 하였는가. 그리고 타인이 어떻게 평가하는가. 여기서(군대) 가장 많이 느낀 어려움이다. (노력을)인정받지 못하는 것…. 이제는 의도를 명확히 해서, 논리를 가지고 어떤 행위에 (심지어 상식이라도) 부딪쳐야겠다.

 

《2.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 '현명한 사람은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음식을 선택한다.' 내 과식의 습관도 교정해주었다.

 

-「단상」

의학의 경우, 육체의 병을 물리치지 못하면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하듯이, 철학 역시 마음의 고통을 물리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우리의 욕망을 합리적으로 조절하여, 철학은 우리의 고통을 합리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우리의 병을 고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위해서 우정을 강조했다. 나는 우정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우정을 통해 나를 더 객관화하고, 더욱 내 존재성을 느낄 수 있다. 나를 옹호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친구들이야말로, 행복의 필수요소가 아닌가. H와 L, 그리고 K와 J는 내 행복이다. :-)

 

좀 더 마음을 열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더욱 소통하고 싶다. 군대가 더욱 좋은 계기가 되길! 우정만 있다면, 나는 분명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을것이다.

 

《3.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철학의 임무는 우리의 바람이 현실세계의 단단한 벽에 부딪힐 때, 가능한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본문 중)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것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존재 유형에 대해서 품고 있는 위험천만한 낙천적인 견해들이다.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불안정성과 화해해야만 한다.

 분노·충격·불균형·근심, 그리고 조종당한다는 느낌이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요소라고 나열하고 있다. 특히 불공평, 불공평은 정의의 규율들이 침해당한 느낌이다. 명예로운 행위에는 보상이, 나쁜 행위에는 벌을 받는 것이 정의이다. 어떤 사람이 올바르게 행동하는데도 재앙으로 고통받는다면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람은 두 가지를 생각할 텐데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 나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나머지는 자신이 진정 악한 사람은 아닌데 정의의 집행이 잘못되어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언급하는 것으로 항상 자신의 운명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에게 일어난 것들 모두가 언제나 우리 자신에 대한 어떤 암시를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 우리는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당연히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And를 'In order to'로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 착오는 "정신의 나약함"과 관계가 있다. 무조건 모욕으로 판단하는 그들의 성향 뒤에는 자신이 조종당할 만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본문 중) 난 이제 막 나 자신의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ㅡ.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사건들이 일어날 때 우리가 일으킨 반응의 폭력성을 줄이려면, 지금까지 각자의 목을 죄고 있는 사슬이 풀어진 경우가 결코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저항하느라고 자신의 힘을 소진하느니보다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순응하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4.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본문 중)

소크라테스에게 사람들이 그대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그는 "아테네에서"라고 대답하지 않고 "세계에서"라고 대답했다.

 이를 읽고 나는 반드시 여행한다고 결심했다. '세계의 다양성' 사람 모두가 온전히 완전하게 나왔다. (참조 : 요슈타인 가아더 - 체크메이트.) 내가 양면적인 것도, 방귀를 뀌는 것도, 이성적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온전한 '나'다. 나는 세계로부터 왔다. 나는 사람이다. 인간의 것 중에서 나에게 낯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문학적 편견 때문에 오해를 사면 안된다. 우리에게 낯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관습(문화)들이 결점으로 받아들어져서는 곤란하다. 국적과 친숙함을 선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다.

 

몽테뉴는 지식을 두 개의 범주로 보았다. 학문(Learning)과 지혜(Wisdom) 학문은 논리학·어원학·문법·라틴어·그리스어. 지혜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이를테면 사람들이 행복하게 도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당되었다. 즉,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책에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됨을 말했다. 위대한 책들은 너무도 많은 주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들이 우리의 호기심을 한계짓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책들은 오히려 우리 정신 계발을 가로막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니체. 니체는 고통의 역할을 "선한 무엇인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겪는 자연스럽고 또 피할 수 없는 단계"로 인정함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완성'이라고 하였다. 모든 고통은 어렴풋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신호이다. 그런 고통도 당하는 사람의 정신력과 현명함 정도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내가 하는 일에 논리를 확보하는 것. 무심코 일을 넘어가지 말 것. 고통도 감수할 것.(작은 것 마저도ㅡ, 작은 걸 할 줄 알아야 큰 것도 할 줄 안다.)

 

삶에 대한 의지.

 

나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력하고, 고통을 이겨내야만 성취하고 완성에 이르기에. 따라서 나는 내가 하고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명확하게 찾아보겠다. 힘을 함부로 소진하지 않겠다.

 

친구가 보고싶다.

 

철학의 위안 (양장)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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